수강자들이 질문하는 교양 콘텐츠 인기 학창시절엔 못 했던 질문 대신 해주는 셈 대학은 지식 갈망 채워줄 교육 고민해야
박원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입시열풍 못지않게 뜨거운 교육의 현장이 있다. 멀리 찾을 것이 아니라 당신 주변의 누군가가 잠들기 전 시간을 쪼개 매일 밤 경제나 세계사를 유튜브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면 지금 한국을 조용히 뒤흔들고 있는 평생교육 열풍의 현장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가히 새로운 현상이고 “지식 콘텐츠의 시대”라 할 만하다. 인문학이 위기라고, 순수과학이 위기라고, 공학이 위기라고 누가 말했던가. 전문가가 홀대받고 지식의 사회적 역할이 사라졌다고 누가 개탄했던가. 지식을 독점하던 대학이 주춤하는 사이에, 이제 사람들이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 공간이 온라인으로 옮겨 간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눈살 찌푸리게 하는 정치 유튜브보다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보는 것이 지식채널들이고, ‘교양’을 내세우는 방송 프로그램들의 대부분도 동일한 포맷으로 제작되어 결국은 방송국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궁금증이 생기면 포털 검색이 아니라 유튜브 검색을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생각해보면 공부라는 것은 스스로를 닦고 수련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생각해보면 지식이라는 것은 목적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던가.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공교육이 입시와 취업을 위한 합목적적인 과정으로 대체되어 버린 장면에서, 수많은 중노년들을 포함한 사람들이 뒤늦게서야 ‘제대로 된’ 공부를 찾아, 채워지지 않는 무엇인가를 채워보려 밤새워 열심히 수련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지식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과 스스로를 수련하려는 갈망만큼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다. 덤으로, 제대로 된 합의와 준비를 하기도 전에 우리 공동체는 평생교육의 한 훌륭한 모델을 얻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지식 콘텐츠만이 지니는 특징이 있다. 외국의 지식 콘텐츠들이 강의자가 직접 수강자인 시청자에게 말을 거는 차분한 “인강(인터넷 강의)”의 형태를 띠고 있다면, 우리의 지식 콘텐츠는 반드시 강의자와 명확하게 구분되는 수강자의 역할을 하는 출연자들이 있고,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 자체가 콘텐츠를 구성한다는 점이다. TED 강연 등 외국 지식 콘텐츠에는 찾아볼 수 없는 수강자 역할을 하는 출연자들이야말로 ‘K지식콘텐츠’ 성공의 비밀이라고 생각한다.
화면 속 수강자들이 수행할 역할은 적절한 질문을 적절한 타이밍에 던지는 일, 예컨대 중동외교 최고 전문가를 모셔놓고 중동의 위치를 묻는 것이 어색하지 않아야 한다. 엄숙한 강의실에서 수업 첫날 학생이 차마 던지지 못했던 질문, 남의 눈총이 두렵거나 교수님이 어렵게 느껴져서 그냥 두었던 의문들을 대신해서 던져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식유튜브의 성공은 우리 공교육이 실패한 곳에서 시작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그 질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남이 대신 던져준 질문은 결국 영원히 나의 질문이 되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상기한다. 질문을 스스로 만들고 직접 던져보는 것, 교육의 목적이 단편적 지식의 누증이 아니라 주어진 지식의 체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 속에 존재하는 손톱만큼의 문제를 찾아내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것을 우리가 비로소 ‘교양’이라 부를 수 있지 않겠는가.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직접 만나 의견과 영감을 나누면서 서로 성장하는 것을 우리 대학과 공교육이 지금보다 훨씬 더 잘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우리 공교육의 성패는 지식유튜브가 멈추는 지점에서부터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박원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