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수 부국장
검사들끼리 쓰는 은어 중에 ‘불장’이라는 것이 있다. 불기소장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검사는 수사를 마무리할 때 공소를 제기하면 공소장을 쓰고 법원에 제출한다. 반대로 기소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할 땐 불기소 이유를 적은 문서를 남겨야 한다. 흔히 검사는 공소장으로 말한다고 하지만 어떻게 보면 ‘불장’으로도 말하는 것이다.
도이치 사건, 불기소장과 공소장 다 공개
불기소장엔 반드시 담당 검사와 수사 결과, 처분 이유를 기재해야 한다. 어떠한 이유로 공소를 제기하지 않는지를 기록으로 남길 의무가 있는 것이다. 당사자 외에 고소인이나 고발인이 불기소장을 볼 수 있고, 그 내용에 동의하지 않으면 불복 절차를 제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검사에겐 불기소장도 공소장처럼 성적표가 매겨지는 시험 답안지와 같다.
그 소문과는 무관하지만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이야말로 결국 ‘불기소장을 쓰느냐, 마느냐’가 핵심 쟁점인 사건이다. “기소는커녕 소환조차 못 한 사건”이라는 여권 입장에서 본다면 이미 불기소장을 썼어야 했다. 하지만 수사 기간이 모두 4년, 현 정부에서만 2년이 넘었지만 불기소장은 나오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 지휘부가 교체된 5·13 검찰 고위 간부 인사는 ‘왜 불기소장을 아직까지 쓰지 않았느냐’에 대한 문책성 인사라고 보는 게 검찰 내부의 대체적 시각이다.
그렇다면 검찰은 앞으로 불기소장을 쓸 수 있을까. 사회적 논란이 된 사건의 불기소장은 그동안 예외 없이 공개됐다. 만약 김 여사의 불기소장이 작성된다면 그 전문이 그대로 외부에 알려질 가능성이 높다. 곧 개원할 22대 국회가 특검법을 통과시켜 특검이 출범한다면 가장 먼저 불기소장의 적정성부터 살펴볼 것이다. 자칫 탄핵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결재권자의 책임도 따지겠지만 아무래도 불기소장을 직접 작성한 담당 검사가 가장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 구조다. 담당 검사로서는 호랑이 꼬리를 밟는 것처럼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다.
도이치모터스 사건은 주임 검사가 여러 번 바뀌었지만 “대면 조사 없이는 공소장도 불기소장도 쓸 수 없다”는 것이 수사팀의 일관된 의견이었다고 한다. 김 여사 명의의 계좌가 주작조작에 이용된 것은 팩트여서 최소한 김 여사가 검찰에서 전후 사정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피의자의 주장을 살펴보건대’라는 식으로 당사자의 사정을 감안해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검찰 지휘부는 김 여사 대면 조사를 밀어붙이지 않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재판 결과를 지켜보겠다고 했다. 검찰로서는 불기소와 기소 사이에서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법원에서 공소 시효가 완성됐다고 판단하면 공소권 없음으로 손쉽게 처분하길 기대했다고 볼 수 있다.
檢 “있다, 없다” 법원보다 먼저 말해야
정원수 부국장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