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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정원수]누가 ‘불장’을 쓸 것인가

입력 | 2024-05-27 23:21:00

정원수 부국장


검사들끼리 쓰는 은어 중에 ‘불장’이라는 것이 있다. 불기소장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검사는 수사를 마무리할 때 공소를 제기하면 공소장을 쓰고 법원에 제출한다. 반대로 기소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할 땐 불기소 이유를 적은 문서를 남겨야 한다. 흔히 검사는 공소장으로 말한다고 하지만 어떻게 보면 ‘불장’으로도 말하는 것이다.

도이치 사건, 불기소장과 공소장 다 공개

불기소장엔 반드시 담당 검사와 수사 결과, 처분 이유를 기재해야 한다. 어떠한 이유로 공소를 제기하지 않는지를 기록으로 남길 의무가 있는 것이다. 당사자 외에 고소인이나 고발인이 불기소장을 볼 수 있고, 그 내용에 동의하지 않으면 불복 절차를 제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검사에겐 불기소장도 공소장처럼 성적표가 매겨지는 시험 답안지와 같다.

흔히 공소장의 내용을 갖고 공소 사실에 어떤 부분을 넣고, 뺄지를 놓고 검찰 내 알력이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불기소장을 놓고도 티격태격한다. 검사가 불기소장을 쓰느니 사표를 쓰겠다고 버티고, 결재라인에 있는 지휘부는 곤혹스러워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진위는 알 수 없지만 얼마 전에도 비슷한 소문이 돌았던 적이 있다.

그 소문과는 무관하지만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이야말로 결국 ‘불기소장을 쓰느냐, 마느냐’가 핵심 쟁점인 사건이다. “기소는커녕 소환조차 못 한 사건”이라는 여권 입장에서 본다면 이미 불기소장을 썼어야 했다. 하지만 수사 기간이 모두 4년, 현 정부에서만 2년이 넘었지만 불기소장은 나오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 지휘부가 교체된 5·13 검찰 고위 간부 인사는 ‘왜 불기소장을 아직까지 쓰지 않았느냐’에 대한 문책성 인사라고 보는 게 검찰 내부의 대체적 시각이다.

그렇다면 검찰은 앞으로 불기소장을 쓸 수 있을까. 사회적 논란이 된 사건의 불기소장은 그동안 예외 없이 공개됐다. 만약 김 여사의 불기소장이 작성된다면 그 전문이 그대로 외부에 알려질 가능성이 높다. 곧 개원할 22대 국회가 특검법을 통과시켜 특검이 출범한다면 가장 먼저 불기소장의 적정성부터 살펴볼 것이다. 자칫 탄핵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결재권자의 책임도 따지겠지만 아무래도 불기소장을 직접 작성한 담당 검사가 가장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 구조다. 담당 검사로서는 호랑이 꼬리를 밟는 것처럼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다.

도이치모터스 사건은 주임 검사가 여러 번 바뀌었지만 “대면 조사 없이는 공소장도 불기소장도 쓸 수 없다”는 것이 수사팀의 일관된 의견이었다고 한다. 김 여사 명의의 계좌가 주작조작에 이용된 것은 팩트여서 최소한 김 여사가 검찰에서 전후 사정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피의자의 주장을 살펴보건대’라는 식으로 당사자의 사정을 감안해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검찰 지휘부는 김 여사 대면 조사를 밀어붙이지 않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재판 결과를 지켜보겠다고 했다. 검찰로서는 불기소와 기소 사이에서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법원에서 공소 시효가 완성됐다고 판단하면 공소권 없음으로 손쉽게 처분하길 기대했다고 볼 수 있다.

檢 “있다, 없다” 법원보다 먼저 말해야

이번 정부는 검찰 인사를 하면서 ‘정의와 공정에 대한 의지’를 평가 기준으로 삼았다고 홍보한 적이 있다. 공소장을 쓰건 불기소장을 쓰건 검찰 지휘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법원보다 먼저 “있다, 없다” 결론을 내려야 한다. 정치적으로 민감하다고 해서, 대통령 부인이 연루됐다고 해서 범죄 유무에 대한 판단을 다른 기관에 자꾸 미룬다면 ‘정의와 공정에 대한 의지가 없는’ 비겁한 검찰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원수 부국장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