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내가 축구 광팬이라고 하면 축구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분들은 영국의 훌리건(hooliganism·축구폭력)을 떠올리며 염려를 나타낸다. 경기를 관람하면서 야유도 하고 거친 언어로 공격적인 언사를 쏟아내는 정열적인 축구 팬이긴 하지만, 스스로 훌리건이라 생각해본 적은 없다. 영국에서 축구 관람을 처음으로 하기 시작했던 해가 영국에서 훌리건 문제가 대두되었던 바로 그 시기와 맞물려 있지만 홈과 원정 경기를 포함해서 수백 번의 셰필드 웬즈데이(Sheffield Wednesday) 경기를 관람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훌리건들의 폭력 사태를 목격한 적도 없다.
폴 카버 영국 출신·번역가
영국은 축구폭력이 가장 심한 나라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에 비하면 여전히 악명이 높다. 영국에서 축구를 관람할 일이 있다면 주변 상황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영국인들은 리즈(Leeds), 밀월(Millwall), 첼시(Chelsea) 팬들이 유독 문제를 일으킨단 걸 알기에 이들 팬이 무리지어 있는 것을 보면 피해 가려 한다.
그렇다고 사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지난주 나는 인천에서 열린 FC서울의 원정 경기에 다녀왔다. 원정석은 지붕이 없기에 쏟아지는 빗속에 2시간 동안 서서 내 팀을 응원해야 했다. 기대에 부합하지는 못했지만 FC서울이 2-1로 승리했다. 그러나 우리 팀이 이겼다는 사실보다 더 기억에 남을 만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FC서울의 골키퍼가 승리 퍼레이드를 벌이는 동안 인천 팬들이 경기장 안으로 물병 100여 개를 던진 일이다.
사실 인천은 한국에서 내가 방문을 조금 꺼리는 유일한 경기장이다. 상대팀 팬들을 분리하기 위해 경찰이나 관리인들이 배치되는 국내 유일한 경기장이기도 하다. 해외 팬들에게는 인천이 ‘한국의 밀월’이라고 알려져 있다.
한국의 축구 경기는 영국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로 자유롭다. 국내 경기에서 관중은 맥주를 마시며 응원할 수 있지만, 영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영국에서처럼 경기장에서 몸조심해야 할 일이 없기에 연인, 가족과 아이들이 경기장을 찾는다. 하지만 이 자유가 조금씩 위축되어 가는 것이 사실이다. 요즘은 가방을 수색하고, 음료수를 종이컵에 따라 마셔야 하는 규정도 새로 생겼다. 자유가 점점 제한되는 이유는 몇몇 축구 팬의 비이성적인 행동 때문이다. 인천 경기장 사건으로 인해 추가적인 제재가 나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병을 경기장으로 반입하는 것을 금지해 봤자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다. 영국에서도 병의 반입을 허용하지 않지만, 화가 난 축구 팬들은 동전이나 라이터들로 던질 것들을 대체하기 때문이다.
지난 2주 동안 약 100명의 인천 홈 팬이 자백했다고 들었다. 축구는 감정적인 스포츠이고, 90분 내내 시시각각 변하는 경기 진행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니 예민해질 수도 있다. 전 리버풀 감독이었던 빌 섕클리는 축구를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를 뛰어넘는 더 중요한 사건”이라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절대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고 경기장에서 물건을 던지는 행동도 그중 하나다. 이런 행위에 연루된 팬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고 다른 경기에서 같은 행위가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한다.
폴 카버 영국 출신·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