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다가옵니다. 북반구의 관광 성수기가 다가온다는 뜻이죠. 혹시 이번 여름에 해외여행을 계획 중이신가요. 그렇다면 조심하세요. 여러분을 맞이하는 건 아름다운 경치와 따뜻한 환대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대신 관광객 물결과 쓰레기 더미, 셀카봉의 습격, 그리고 주민들의 원성에 시달릴 위험이 있죠.
전 세계적으로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 과잉관광)이 심각해지면서 이를 막기 위한 반대 움직임도 커졌습니다. ‘과잉관광이 이젠 뉴노멀’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해외 여행객이 폭발적으로 증가 추세이기 때문인데요. 거주민과 관광객 모두 원치 않는 과잉관광, 해결책은 뭘까요. 오늘은 오버투어리즘 현상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전 세계 주요 도시 중 처음으로 도시에 들어오는 관광객에게 입장료를 부과했다. 오버투어리즘을 막기 위한 나름의 대응책이다. 게티이미지
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
오지 마! 찍지 마!
후지산 인증샷 때문에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골머리를 앓던 일본의 한 지자체가 결국 21일 전망을 가리는 대형 검은색 그물막(가로 20m, 세로 2.5m)을 설치했다는 뉴스 보셨나요. 일본 야마나시현 후지카와구치코 마을 이야기인데요. 아무 데나 차를 세우는 건 물론, 인근 건물 옥상까지 침입해 사진을 찍는 비매너 방문객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하죠.이뿐 아니라 야마나시현은 7월부터는 후지산 관람인원도 제한한다고 합니다. 가장 인기 있는 등산로인 ‘요시다 루트’ 5부 능선에 게이트를 만들어서 하루 통과 인원을 4000명 이내가 되게 할 거라는데요. 통행료 2000엔(약 1만7500원)도 부과합니다.
SNS에서 인증샷 명소로 핫했던 일본 후지카와구치코 마을의 로손 편의점 전경. 사진 찍는 관광객들로 혼잡이 이어지자 결국 검은 그물막으로 전망을 가렸다. 유튜브 화면 캡처
스페인 바르셀로나시는 지난달 구글맵과 애플 지도에서 116번 버스 노선을 삭제해버렸습니다. 116번은 안토니오 가우디의 디자인으로 유명한 구엘공원에 정차하는데요. 몰려든 관광객 때문에 버스가 너무 붐벼서 주민들(특히 노인들)이 버스를 타지 못할 지경이 되자, 시의회가 구글 등에 노선 삭제를 요청한 겁니다. 지역 주민들은 실제 이 조치가 효과 있다(버스에 관광객이 줄었다)면서 반긴다는데요.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구엘공원 전체를 구글맵에서 삭제하는 것”이라는 이 지역 시민운동가 이야기가 아주 농담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관광객들이 사랑하는 구엘공원을 지나는 바르셀로나의 116번 버스 노선은 이제 구글맵에서 지워졌다. 게티이미지
가장 기발한 발상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건 이탈리아 베네치아였는데요. 4월 25일부터 성수기 특정 날짜엔 도시 방문객에게 5유로(약 7500원)의 입장료를 부과하는 시범 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일부 관광지역이 아닌 도시 진입 자체에 입장료를 물리다니, 참 유례없는 일인데요. 베네치아는 주민(4만9000명)보다 훨씬 많은 관광객(연간 2000만명)이 몰리는 곳이죠. “도시를 폐쇄하는 게 아니라 폭발하지 않게 하기 위한 조치”라고 루이지 브루그나로 베네치아 시장은 취지를 설명하는데요. 정작 베네치아 시민들은 도시를 테마파크 ‘베네치아랜드’로 만들려는 거냐며 비판합니다.
관광객 입장료 부과가 시작된 4월 25일 베네치아를 찾은 여행객이 입장료 5유로를 내고 있다. AP 뉴시스
비슷한 조치는 유럽 바깥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발리는 올해 2월부터 15만 루피아(1만3000원)의 관광세를 걷고요. 사파리 투어로 유명한 케냐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은 1월 1일부터 티켓 가격을 두배 이상으로 인상했습니다.
올해 여행객 역대 최대 전망
한마디로 전 세계 곳곳이 과잉관광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참지 않고 지방정부 차원에서 단호하게 대응하기 시작했죠.이런 오버투어리즘 현상은 코로나 이후 보복여행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영향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문제는 이게 반짝하고 말 일이 아니란 겁니다. 왜냐하면 해외 여행객이 올해 역대급으로 늘어날 뿐 아니라, 앞으로 수년 동안 계속 늘어만 갈 테니까요.
왜 이렇게 관광객은 빠르게 늘어만 갈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먹고살 만해졌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중산층 인구의 급증 때문인데요. 전 뉴욕관광청 이사인 맥스 스타코프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지난 25년 동안 25억명 넘는 사람이 빈곤층에서 중산층으로 올라갔습니다. 향후 20년 동안엔 20억명이 추가될 겁니다. 중산층은 가처분 소득 상승을 의미하고, 가처분 소득 증가는 곧 여행을 뜻합니다.” 중국에 이어 인도까지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여행을 떠날 여유가 생긴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어난 거죠.
동시에 이들 중 상당수가 비슷한 욕구를 갖고 있다는 것도 오버투어리즘 문제를 키우는 이유입니다. 소셜미디어 영향이 크죠. 위대한 예술작품이나 건축물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 게 너무나 중요해진 건데요. ‘인증샷 성지’로 알려진 일부 핫스폿에 관광객이 집중되면서 혼란을 가중시킵니다. 위성데이터를 분석해 지속가능한 관광을 연구하는 프랑스 스타트업 머머레이션 분석에 따르면 전 세계 여행자의 80%가 단 10%의 관광지를 방문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잠시 꺾였지만 해외여행객은 전 세계적으로 늘어만 간다. 올해는 역대 최고일 전망이다. 뉴시스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에 손해
오버투어리즘을 얘기하면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관광객 때문에 일자리가 생기고 경제도 성장하니까 어느 정도 불편은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요.하지만 바로 그 부분-관광객이 쓰는 돈이 어디로 가느냐-이 문제입니다. 관광으로 벌어들인 돈이 현지인 생활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지역 인프라에 투자된다는 보장이 없죠. 돈 버는 건 소수이고, 실제 대다수 지역 주민엔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스페인 이비자섬은 에어비앤비로 전환한 임대주택이 크게 늘어난 데다, 북유럽인들의 세컨하우스 수요까지 겹치면서 임대료가 급등했다. 수년째 과잉관광 반대 운동을 벌여온 지역 시민단체는 며칠 전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게티이미지
사실 오버투어리즘은 관광객에게도 큰 문제입니다. 자칫 돈은 돈대로 쓰면서 유적이나 자연풍광 대신 다른 사람 뒤통수만 보다 오게 될 수 있으니까요. 치솟는 가격, 너무 긴 줄, 붐비는 해변, 훼손된 유적지는 관광객 역시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소중한 휴가를 그렇게 망치고 싶진 않다고요.
무엇보다 오버투어리즘이 계속된다면 관광산업엔 위기입니다. 가장 중요한 제품-매력적인 관광지-이 남아나질 않게 될 테니까요. 호주 웨스턴시드니대학교의 관광학 교수 조세프 치어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버투어리즘은 단순히 관광을 너무 많이 하는 것 이상입니다. 이는 정부정책의 실패와 관광 관리의 무능력에 관한 것입니다.”
더 많은 세금? 더 많은 연구!
그럼 해결책이 무엇일까요? 관광을 덜 하게 만들자고요? 글쎄요. 관광지 폐쇄 같은 극단적 조치가 아니고는 관광객의 절대 숫자 자체를 줄이기란 상당히 어렵습니다. 베네치아의 입장료 정책을 보면 알 수 있죠. 앞에서 설명한 대로 관광객이 몰릴 만한 날짜엔 도시 방문객에게 5유로의 입장료를 걷고 있는데요. 오히려 베네치아엔 전년보다 더 많은 관광객(하루 8만명 이상)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완전히 실패한 정책”이란 비판이 쏟아지죠.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전 세계 많은 여행자들에게 베네치아는 일생에 한 번 가볼 만한 곳으로 꼽히잖아요. 5유로 때문에 방문을 주저하게 되진 않는 겁니다. 관광객이 요금에 민감할 거란 정책의 기본 전제 자체가 틀린 셈이죠. 스페인 로비라이비르길리대학 지리학 교수인 안토니오 파올로 루소는 이 조치가 정치적 제스처일 뿐이라며 이렇게 지적합니다. “5유로는 수요에 큰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이 시스템 도입이 방문자에게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에 대한 사전 연구조차 없었습니다.” 어찌 보면 베네치아의 5유로 입장료는 해결책이라기보다는 과잉관광이 이 정도로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 하겠습니다.
로마를 찾는 한해 5000만명의 관광객 중 4800만명은 콜로세움을 찾는다. 어떻게 해야 이들을 다른 곳으로 분산할 수 있을까. 게티이미지
어떻게 하면 숨겨진 보물 같은 곳을 발굴해서 알릴까요. 인증샷 찍기가 아닌 문화를 체험하는 여행이 되게 하려면 어떤 프로그램이 필요할까요. 비수기에도 관광객들이 찾아올 만한 즐길 거리는 무엇일까요. 정부와 관광청, 여행업계까지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겁니다. 더 많은 데이터와 연구, 마케팅 노력이 필요하죠.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대학의 해럴드 굿윈 명예교수는 이에 더해 이렇게 당부합니다. “(새로 발굴한) 다른 곳에서도 같은 문제가 재현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관광을 통해 무엇을 원하는지를 지역주민들과 협의해 명확한 전략을 수립하는 겁니다.”
아울러 여행자들도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가디언의 사설 한 토막을 전합니다. “관광객 스스로도 자제력을 발휘하고 멀리 떨어진 명소가 아닌 로컬 여행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구엔 경이로운 곳이 많습니다. 그 경이로움에 다가가려면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By.딥다이브
여행 명소 사진을 고르다 보니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앞으론 언제 어디로 가야 환대 받을 수 있을지를 미리 따져보고 여행 계획을 짜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일본 후지카와구치코 마을은 밀려드는 관광객을 막기 위해 검은 가림막을 쳤습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인기 버스 노선을 구글맵에서 지웠고요. 베니스는 도시 입장료 5유로를 부과합니다. 모두 오버투어리즘에 대응해 나온 조치입니다.
-과잉관광은 이제 새로운 표준입니다. 올해 전 세계 해외여행객은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할 겁니다. 신흥국의 경제 성장으로 관광객은 계속 늘어만 갑니다.
-관광세나 입장료를 거둔다고 여행객 물결을 막을 순 없을 겁니다. 훨씬 더 정교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목적지를 발굴하고 비수기 여행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게 최선입니다. 여행객들도 뻔한 명소 대신 색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면 어떨까요.
*이 기사는 2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