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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문 입막음’ 최후변론…트럼프 “협박 피해자” vs 검찰 “유권자 기만”

입력 | 2024-05-29 11:39:00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성추문 입막음 의혹과 관련한 형사재판이 28일(현지시간) 7주째 열린 가운데 이날 검찰과 변호인단은 유무죄를 가릴 배심원 평결을 앞두고 최후변론을 진행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그를 협박 피해자라고 옹호했지만, 검찰은 2016년 대선 직전 회삿돈으로 입막음돈을 건네 미 유권자들을 속이고 회계장부를 조작했다고 직격했다.

로이터·AFP 통신에 따르면 검찰과 변호인단은 이날 뉴욕주 맨해튼지방법원에서 최후변론을 갖고 뉴욕 주민들로 구성된 12명의 배심원들을 이같은 논리로 설득했다. 최후변론은 변호인단이 먼저 무죄 취지의 변론을 하면 입증 책임을 진 검찰이 이를 논박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토드 블랑쉬 변호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결백하다. 그는 어떤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포문을 열었다.

블랑쉬 변호사는 이어 트럼프 전 대통령이야말로 성인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에 의한 협박 피해자라고 두둔했다. 그러면서 대니얼스에 대해선 “대선을 지렛대로 삼아 돈을 벌려고 했다”고 비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6년 대선을 앞두고 각종 여성 편력과 성추행 논란에 휩싸인 틈을 타 그의 성생활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해 돈을 갈취하려 했다는 얘기다. 배심원단을 향해선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법정에서 들은 증언에만 집중한다면 매우 쉽게 무죄 평결을 내릴 수 있다”고 호소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직전, 자신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대니얼스의 폭로를 막기 위해 자신의 전속 변호사 마이클 코언을 통해 13만달러(약 1억7000만원)를 먼저 지급하도록 하고, 이후 회삿돈으로 변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해 4월 트럼프 전 대통령을 기소한 뉴욕주 검찰은 그가 코언에게 빚진 입막음 돈을 변제하는 과정에서 트럼프그룹 회계장부에 34차례에 걸쳐 법률 자문료라고 조작해 주(州) 및 연방세법과 선거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블랑쉬 변호사는 이날 최후변론에서 코언이 대니얼스에게 입막음 돈을 건넨 사실을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검찰이 입막음 돈 변제 시점으로 지목한 2017년은 트럼프 전 대통령 집권 이후로 “국정 운영에 힘쓰느라 책상에 올라오는 모든 청구서를 면밀히 검토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코언에게 지불한 법률 자문료 역시 월급의 일부로 국세청에도 신고돼 문제 될 게 없다고 일축했다.

나아가 코언에 대해선 검찰 측 핵심 증인이었던 만큼 증언 신빙성을 뒤흔드는 전략을 사용했다. 그는 코언에 대해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거짓말쟁이”라며 “상사에 대한 노골적인 증오가 (증언) 동기가 됐다”고 깎아내렸다. 코언은 14일 재판에 출석해 트럼프그룹이 자신에게 지불한 법률 자문료는 입막음 합의금을 변제받기 위한 가짜였다고 증언한 바 있다. 한때 ‘해결사’로 불렸던 코언은 이 일로 기소돼 2018년 징역 3년을 선고받았고 이 과정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사이가 틀어졌다.

반면 조슈아 스타인글라스 뉴욕주 맨해튼지검 검사는 이날 최후변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6년 대선에서 자신의 성추문을 감춤으로써 유권자들을 기만했다고 반박했다. 스타인글라스 검사는 “선거일 2주 전에 대니얼스가 돈을 받은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들이 꾸민 계략이 트럼프 대통령을 당선시킨 것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선거 막판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과거 음담패설을 했던 녹음파일이 ‘액세스 할리우드’란 프로그램에 방영돼 곤혹을 치르고 있었는데, 성인배우와의 성관계까지 폭로됐더라면 논란을 진화하지 못해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이 백악관에 입성했을 수 있었단 얘기다.

이어 스타인글라스 검사는 “자신이 피해를 입을 거라 생각해서 선거 사기를 저지르거나 사업 기록을 위조해서는 안 된다”며 대니얼스에게 지급한 돈이 유권자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불법 선거 기부금에 해당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대니얼스가 먼저 돈을 요구했는지 여부는 재판의 쟁점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또한 연예잡지 ‘내셔널 인콰이어리’의 발행인 데이비드 페커가 트럼프 전 대통령 성추문과 관련한 기사를 묻기로 합의했던 점도 강조했다. 페커는 지난달 23일 재판에서 기사를 독점적으로 매수하는 방식으로 대선 직전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각종 성추문 및 사생아 논란을 덮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성추문 입막음 재판은 지난달 15일 시작돼 12명의 배심원을 선정했고, 이후 5주간 총 20명의 증인이 이들 앞에서 사실관계를 증언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니얼스와 성관계를 가진 적이 없다며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해 왔다. CNN 방송에 따르면 현지시각으로 이날 오전 9시30분에 시작된 최후변론은 11시간 만에 종료됐다. 재판을 맡은 후안 머천 판사는 오는 29일 재판을 속개해 배심원단 평결 절차를 개시하기로 했다.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판 도중 소셜미디어를 통해 “변호인단의 최후변론을 왜 마지막에 하면 안 되냐”며 “매우 불공평하다”고 주장했다. 법정 밖에선 유명 배우 로버트 드니로가 집회를 열고 트럼프 전 대통령을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광대’라고 비판했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1심에서 어떤 판결이 나오든 간에 역사상 전현직 대통령 기소와 재판은 이번이 처음인지라 미국 사회의 분열과 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