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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튀긴 기름으로 뜨는 비행기… 지속가능항공유 시장 ‘활짝’ [딥다이브]

입력 | 2024-05-30 03:00:00

항공 탄소중립 목표에 SAF시장 ‘쑥’… 올 생산량, 작년의 3배로 늘어날듯
美-EU 등 주요국 시장 선점 속… 韓은 생산시설 짓는 중, 한발 늦어
일각선 “원료 공급 한계” 지적도




항공산업에 친환경 바람이 불면서 지속가능항공유(SAF)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이를 선점하려는 주요국과 대형 석유회사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탄소중립 비행을 향한 기대가 커지지만, 원료 공급이 한계로 지적된다.

● 탄소중립 비행의 유일한 대안

지난해 11월 영국 항공사 버진애틀랜틱은 폐식용유로 만든 SAF를 넣은 항공기로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했다. 세계 최초의 100% SAF를 이용한 장거리 비행이었다. 치킨 튀긴 기름으로 비행기를 띄우는 시대는 이미 현실이다.

SAF는 화석연료가 아닌 지속가능한 공급원료로 생산하는 항공연료이다. 폐식용유뿐 아니라 동물성 기름, 옥수수·해조류로 만든 바이오에탄올, 폐목재 등이 재료가 된다. 바이오 원료를 쓰기 때문에 일반 항공유보다 탄소배출량을 80%까지 줄일 수 있다.

SAF가 항공업계에 처음 등장한 건 2008년. 여전히 항공연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1%밖에 되지 않는다. 일반 항공유의 3∼5배에 달하는 가격이 걸림돌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5%를 차지하는 항공 부문도 2050년 탄소중립이란 목표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기 항공기는 배터리 무게 때문에 장거리 비행이 불가능하고, 수소 항공기는 수소 생산·보관·충전 인프라 구축에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 반면 SAF는 엔진 개조 없이 모든 항공기에 넣을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기존 항공유와 섞어 쓸 수도 있다. 탄소중립 비행으로 가기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 SAF가 떠오른 이유다.

● 미국은 보조금, EU는 의무화

아직 초기 단계인 SAF 시장의 성장세는 폭발적이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올해 SAF 생산량이 지난해의 3배인 18억7500만 L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2030년 사용을 위해 43개 항공사가 미리 계약해둔 SAF 물량을 합치면 162억5000만 L에 달한다. 윌리 월시 IATA 사무총장은 “2050년 항공산업 탄소중립 목표에 도달하려면 SAF 생산의 기하급수적 증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주요국은 이미 시장 선점을 위해 나섰다. 미국은 SAF 생산업체에 1갤런(3.8L)당 1.25∼1.75달러(1700∼2400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한다. 2030년까지 SAF 생산량을 지난해의 100배가 넘는 연 30억 갤런(114억 L)으로 늘린다는 목표다.

유럽연합(EU)은 내년부터 공항에서 이륙하는 항공기에 SAF를 일정 비율 이상 혼합하도록 의무화한다. 이 비율은 2%로 시작해 2030년 6%→2035년 20%→2050년 70%로 올라간다. EU혁신기금을 통해 SAF 생산시설 건설도 지원한다. 일본과 싱가포르, 영국 역시 1∼10%의 SAF 혼합 의무화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은 올 1월에야 국내 정유사가 SAF를 생산할 수 있도록 석유사업법을 개정한 상황. 국내 정유업계는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중이다. 영국의 BP와 셸, 프랑스 토탈에너지스, 미국 셰브런·필립스66 같은 메이저 정유사가 SAF를 생산 중인 것과 비교하면 한발 늦었다.

● 폐식용유·옥수수가 모자랄 판

SAF가 전 세계 항공과 정유업계의 뜨거운 관심사인 건 분명하지만 뚜렷한 한계도 있다. 원료 공급을 무한정 늘릴 수 없단 점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1년에 나오는 폐식용유는 60만 t 정도다. 이를 모조리 SAF 생산에 투입해도 미국 항공연료 수요의 1%밖에 채우지 못한다. 바이오에탄올을 원료로 쓰는 경우엔 옥수수 키울 땅이 문제다. 영국 가디언은 “영국이 항공연료를 (옥수수 기반 SAF로) 완전히 대체하려면 모든 농경지의 50%를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SAF 생산이 늘면 팜유가 폐식용유로 둔갑해 팔리면서 열대우림 파괴로 이어질 거란 우려도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 IPS는 최근 보고서에서 “SAF는 화석연료에 대한 현실적이거나 확장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니다”라면서 “항공업계의 그린워싱(친환경 위장술)”이라고 꼬집었다. SAF 생산량을 단기간 획기적으로 늘릴 방법이 없으니, 항공 수요를 줄이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