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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개척자[이은화의 미술시간]〈321〉

입력 | 2024-05-29 23:00:00


스웨덴 화가 안나 보베리는 1901년경에 북극의 오로라 풍경을 그렸다. 제목도 ‘오로라, 노르웨이 북부에서의 습작’(사진)이라 붙였다. 지금도 극지방 여행이 쉽지 않은데, 120여 년 전 화가는 오로라를 직접 보고 그린 걸까? 아니면 상상으로 그린 걸까?

보베리는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는 않았다. 파리에서 쥘리앙 아카데미를 잠깐 다닌 것이 전부다. 여행은 그녀의 삶과 예술에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었다. 18세 때 가족과 함께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24세 때 첫 전시회도 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예술적인 삶이 37세가 되던 1901년에 시작됐다고 말한다. 건축가 남편과 함께 노르웨이 북부를 여행하면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기 때문이다. 특히 북극권에 가까운 로포텐 제도의 웅장한 풍경과 대자연에 완전히 매료돼 그림의 주제로 삼았다. 이후 보베리는 33년 동안 로포텐을 찾아 그곳 사람들과 풍경을 그렸다. 화가는 오로라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기 위해 무척 고심했던 듯하다. 사실주의적이던 이전 그림에 비해 색채는 훨씬 강렬하고 하늘은 추상에 가깝다.

로포텐 풍경화는 1903년 스톡홀름에서 처음 전시됐다. 반응은 어땠을까? 혹평이 쏟아졌다. 여성 화가가 극지를 여행하고 혁신적인 스타일로 그린 그림을 사회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탓이었다. 오히려 그녀의 그림은 프랑스나 미국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오로라는 ‘새벽’이란 뜻을 가진 라틴어다. 보베리는 새로운 그림으로 스웨덴 미술계의 새벽을 열고자 했다. 여성 화가는 실내에서 정물이나 인물이나 그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을 터. 그녀는 세상 밖으로, 아니 극지방을 30년 넘게 혼자 여행하며 대자연의 신비를 화폭에 담았다. 그렇게 스스로 북극의 화가가 되었다. 어떤 화가도 시도하지 못한 새로운 길을 만든 용감한 개척자였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