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말~6월초, 선조들 힘겨웠던 보릿고개 먹거리 국내산은 45% 불과해 FTA 중요 우리가 먹는 소고기 절반 이상이 미국산 광우병 시위 세력들, 지금 무슨 생각 할지…
김도연 객원논설위원·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산업 문명을 거쳐 디지털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는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24절기(節氣)를 거의 잊고 말았다. 물론 동지, 하지 등은 일 년 중 밤이나 낮이 가장 긴 날 등으로 잘 알고 있지만 5월 20일경의 소만(小滿)이나 6월 5일 무렵의 망종(芒種) 등은 이제 누구도 그 의미를 새기지 않는 듯싶다. 24절기는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고안된 것이다. 음력만으로는 농사에 적합한 날짜를 택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계절 변화를 알리는 양력의 요소를 도입한 것이다.
농업시대 평민의 삶에서 편하고 풍족한 날들은 매우 드물었지만 소만과 망종 사이, 즉 바로 이맘때는 일 년 중 가장 어렵고 고달픈 시기였다. 소만은 여름의 문턱에 들어서는 시기이니 무엇보다 모내기를 준비해야 하는 힘겨운 날들이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큰 어려움은 묵은 곡식이 다 떨어지고 햇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아 먹기보다 굶기가 일상이 되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보릿고개가 태산보다 더 높다고 했을까?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해야 했던 참혹한 보릿고개를 우리 사회 고령 세대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망종은 밭에 씨앗을 뿌리는 절기인데 보리를 베어야 밭갈이도 할 수 있고 이 일이 모내기와 겹치니 일손이 태부족일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래서 “망종에는 발등에 오줌 싼다”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일 년 중 눈코 뜰 새 없는 가장 바쁜 시기였다. 그래도 보리를 수확하면서 배고픔을 면할 수 있었던 시점이니 조금은 안도하지 않았을까? 모내기로 한 해 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풍년에 대한 기대감도 가졌을 수 있다.
우리에게 식량이 풍족해진 첫 번째 이유는 농업기계화와 더불어 화학비료 및 각종 살충제 그리고 육종학의 발달로 작물 생산량이 대폭 늘어난 결과다. 여기에 더해 우리는 많은 식량을 외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는데, 이는 물론 기술과 산업발전으로 넉넉한 경제력을 갖게 된 덕이다. 실제로 우리가 소비하는 총 식량 중 국내산의 비율은 45% 정도다. 결국 먹거리 절반 이상은 외국에서 들여오고 있는 셈이며, 식량자급률은 OECD 38개 국가 중 거의 바닥권이다.
이런 측면에서 농식품 분야 자유무역협정(FTA)은 우리에게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대한민국은 2004년 칠레를 시작으로 지난 20년간 총 59개국과 FTA를 체결했다. 그 후 외국에서 들여오는 농식품은 계속 증가해서, 우리는 지난해 총 470억 달러, 즉 60조 원 정도의 먹거리를 수입했다. 기후 변화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식량안보 문제가 부각되고 있는 현실에서, FTA로 교역국을 다변화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아직까지도 우리 정치는 국가정책 결정에서 오로지 소속 집단의 유불리만 따지는 것이 안타깝지만, 당시에 FTA를 반대했던 정치세력은 그래도 농민 보호라는 명분이 있었던 듯싶다.
흑역사는 2008년 이즈음의 소위 소고기 파동이다. MBC의 PD수첩이 퍼뜨린 광우병 괴담에서 비롯된 소고기 수입 반대는 ‘촛불 문화제’라는 이름으로 이명박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정치시위로 번졌다. “뇌 송송, 구멍 탁”이란 공포스러운 선동에 젊은 엄마들은 아기를 태운 유모차까지 끌고 나와 시위에 참여했었다. 국민 건강이라는 명분은 애초부터 허구였고 오로지 정치적 목적만을 지녔던 당시 촛불집회의 배후세력들은 지금 어디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최근 수년간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있어 전 세계 1위 국가는 대한민국이며, 우리가 소모하는 소고기의 절반 이상은 미국산이다. 더불어 전반적인 육류 소비가 늘면서 국내 축산업, 특히 한우 시장도 그 규모가 더욱 성장했다. 궁극적으로 수입을 통한 먹거리 확보는 우리에게 생존을 위한 절대적 요건이다. FTA를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김도연 객원논설위원·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