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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다가올 때 生에 건네는 마지막 편지

입력 | 2024-05-30 03:00:00

[한시를 영화로 읊다]〈82〉 엔딩 노트



영화 ‘엔딩 노트’에서 가족들은 아버지가 엔딩 노트에 기록한 대로 장례식을 치른다. 진진 제공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스나다 마미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엔딩 노트’(2011년)에서 말기암 판정을 받은 아버지는 죽음을 앞두고 엔딩 노트를 작성한다. 조선시대 조영순(趙榮順·1725∼1775)도 죽음을 예감하고 마지막 시를 읊었다.

시인은 공주의 객사에서 세상을 뜨기 전날인 10월 13일 오후부터 임종 당일인 14일까지 세 수의 시를 남겼다. 첫 번째 수에선 51년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았고, 두 번째 수에선 자신의 상여가 고향을 향해 가는 장면을 떠올렸다. 마지막 위 시에선 자신의 장례에 대한 당부를 남겼다.

영화는 아버지의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되어 운구 차량이 장례식장을 떠나면서 끝난다. 아버지는 죽음을 맞기 전 지난 삶을 정리하며 가족에게 남길 엔딩 노트를 준비한다. 가족들은 아버지를 위로하며 삶의 의지를 북돋우려 하지만 아버지는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인다. 도리어 아버지가 신경 쓴 일은 자신의 장례식과 사후에 대한 준비였다. 부고는 누구에게 보낼 것인지, 장례의 방식과 장소 그리고 묘지는 어떻게 할 것인지까지 꼼꼼히 체크한다.

시인은 죽음에 초연했던 진(晉)나라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유령(劉伶)을 떠올렸다. 유령은 늘 술 한 병을 가지고 다니며 사람을 시켜 삽을 메고 따라오게 했다고 한다. 자신이 죽으면 바로 그 자리에 묻어 달라는 요구였다. 시인은 이를 세속에 얽매이지 않는 선비의 죽음 대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따르고자 했다. 그렇기에 자신의 장례에서도 예법에 얽매이지 않길 바랐다. 유교식 상례에선 사람의 죽음이 확인되면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는 초혼(招魂·혼백을 부름)의 의식을 행했다. 고인의 옷을 가지고 지붕 위에 올라가 옷을 휘두르며 ‘복(復·돌아오라는 의미)’을 세 차례 외쳤는데, 시인은 그럴 필요조차 없다고 했다. 죽음을 의연히 받아들이고 남은 가족들을 번거롭게 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잘 드러난다. 시인은 자신의 무덤에 넣을 묘지명마저 스스로 썼다.(‘自誌銘’)

영화 마지막 아버지는 딸의 목소리를 빌려 이렇게 말한다. “이상 저의 엔딩에 대해서 길게도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아까부터 제 행세를 하면서 주절주절 떠들어대던 딸이 저에게 묻네요. 그런데 지금 어디에 계세요. 하지만 그건 좀… 가르쳐 줄 수가 없네요.” 아들이 받아 적은 시인의 마지막 시처럼 영화를 감독한 딸도 아버지의 엔딩 노트를 영상에 담아 놓았다. 무엇보다 소중한 삶, 그럼에도 마지막을 잘 정리하고 준비해야만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