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데우스 로팍 ‘보이스의 초상’展 동시대 예술가 보이스에 빠진 워홀… 1979년 첫 만남 후 드로잉 등 남겨 로팍, ‘초상화 연작’ 한자리에 모아… “워홀, 그를 ‘살아있는 전설’로 여겨”
1980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만난 앤디 워홀(왼쪽)과 요셉 보이스. 이때 워홀이 그린 보이스의 초상화가 나폴리의 갤러리에서 처음으로 전시되면서 두 사람이 만났다. 타데우스 로팍 대표는 “사진으로 봤을 때 둘 사이에 약간은 어색한 기류가 있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 제공
1980년 이탈리아 나폴리 배경의 한 사진.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불린 요셉(요제프) 보이스(1921∼1986)와 ‘팝 아트의 제왕’ 앤디 워홀(1928∼1987)이 사자상 앞에 나란히 섰다. 보이스는 ‘트레이드마크’인 낚시 조끼에 펠트 모자 차림으로 정면을 응시한다. 흥미로운 건 워홀의 두 손. 한 손은 보이스를 잡고, 다른 한 손은 사자 조각상의 입속에 넣고 있다. 마치 “나는 지금 현대미술의 사자를 만나고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앤디 워홀의 ‘요셉 보이스(베이지 배경)’(1980년).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 제공
전시장에서는 보통 한두 차례 초상을 그렸던 워홀이 ‘현대미술의 사자’를 만나고 신난 듯 연필 드로잉부터 실크스크린 판화까지 다양한 매체로 보이스의 얼굴을 수차례 그린 것을 볼 수 있다. 타데우스 로팍 대표는 23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워홀과 보이스의 첫 만남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둘의 만남을 지켜본 미국의 저술가 데이비드 갤러웨이는 “마치 아비뇽에서 두 명의 라이벌 교황이 마주한 것 같은 아우라가 감돌았다”고 설명했다. 이유는 두 작가가 대척점에 선 듯 다른 방향으로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보이스는 예술가가 회화나 조각을 만들듯, 사회와 시스템도 하나의 창의적 작품으로 빚을 수 있다는 ‘사회 조각’ 개념을 제시했다. 독일에 참나무 7000그루를 심는 퍼포먼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강의 퍼포먼스’가 유명하다. 이에 반해 워홀은 대중문화를 예술로 끌어들이고,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품처럼 예술 작품을 만들어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로팍 대표는 “워홀은 예술을 거울 삼아 세상(미국)의 과잉을 비췄고, 보이스는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둘은 서로의 예술을 존중했다고 로팍 대표는 말했다. 그는 “워홀이 보이스를 현대 미술의 ‘살아 있는 전설’로 여겼던 것 같다”며 “사진 하나로 선 드로잉, 다이아몬드 가루를 활용한 실험, 색상 실험 등 다양한 형태로 여러 차례 작업했는데 이는 워홀이 보이스에게 매료됐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로팍 대표는 20대였던 1982년 보이스 스튜디오에 “무급으로라도 일하게 해 달라”고 해 받아들여진 자신의 경험도 소개했다.
그 후 뉴욕으로 떠난 로팍 대표는 워홀이 ‘이건 해야 한다’며 추천해 한 젊은 작가의 드로잉 20점을 가지고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타데우스 로팍의 첫 전시를 열었다. 이 작가는 장미셸 바스키아(1960∼1988)였다. 전시는 7월 27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