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완'시대, 숲이 경쟁력이다] 2부 〈3〉 건강 생태계 유지하는 숲 556년간 훼손 없이 ‘자연 그대로’… 능선부터 하천까지 환경 상호작용 “다양한 생물 어울려 숲 건강 유지… 미래 인공림 답안지로 활용 가능”
9일 경기 포천시 광릉숲 핵심 구역에서 이봉우 광릉숲보전센터장이 수령 250년이 넘은 갈참나무를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포천=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이봉우 광릉숲보전센터장은 9일 일반인 출입이 통제된 경기 포천시 광릉숲 안에 있는 생태연구타워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755ha(헥타르) 규모의 천연림 핵심구역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축구장 1000개가 넘는 광활한 숲에 바람이 일자 마치 초록색 파도가 일렁이는 듯했다. 광릉숲은 1468년 조선 세조대왕릉의 부속림으로 지정된 이래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다. 소리봉과 죽엽산 일대에 있는 광릉숲 핵심구역은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해 556년 동안 훼손이나 인위적 간섭 없이 자연 그대로의 숲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연구용 시설물과 숲길인 임도(林道)뿐이다.
그러다 보니 동식물과 곤충의 생태계가 촘촘해 생물다양성의 터전일 뿐만 아니라 숲의 성장 과정이 남아 있어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다. 이 센터장은 “숲 전체가 하나의 연구실”이라며 “현재 생물다양성 목록화, 인공림 자연 회복성, 천연기념물 복원 등 다양한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광릉숲은 ‘K원시림’으로 국내 숲 발전 방향의 기준점 역할을 한다. 출입 통제 속에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온대 중부 일반 산지 식생’(해발 800m 이하)이 자연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숲의 식생 변화 가운데 안정기에 접어든 온대 활엽수 극상림(極相林)을 이루고 있다. 556년이 응축된 숲의 정보는 훼손된 숲 복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썩은 나무에 사는 말굽버섯
국내에서 해발 800m 이하 일반 산지는 대부분 농업이나 땔감용, 인공림 등으로 쓰이며 온전한 모습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광릉숲은 서어나무와 졸참나무 등 활엽수림을 중심으로 저해발 산지 식생의 본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조용찬 국립수목원 임업연구사는 “광릉숲은 봉우리, 능선, 사면, 하천 범람원 등 모든 환경이 연결돼 상호작용하면서 생물다양성의 보물창고가 됐다”면서 “숲을 조성할 때 답안지로 활용할 수 있는 정보 저장고”라고 평가했다.
광릉숲 천연림을 대표하는 식생은 서어나무와 졸참나무다. 서어나무는 풀, 작은 나무, 침엽수, 활엽수 단계로 이어지는 숲 식생의 변화 과정에서 가장 마지막 단계에 나타나 우위를 점해 ‘숲의 지배자’로 불린다. 이 덕분에 주로 말라서 죽은 서어나무에서 서식하는 천연기념물 제218호인 장수하늘소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광릉숲에서만 살고 있다. 이 밖에 하늘다람쥐, 황조롱이, 까막딱따구리 등 천연기념물 19종(조류 17, 포유류 1, 곤충 1종)이 산다.
● 기후변화 대응할 숲의 기준으로
그뿐만 아니라 광릉숲은 직접적인 탄소저감 효과와 더불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건강한 후대 숲을 양성하는 기준이 된다. 국립수목원이 발행한 광릉숲 시험림 보고서에 따르면 1ha 면적에 서어나무, 갈참나무 등 30개 종의 나무가 자란 것으로 조사됐다. 연간 이산화탄소 저장량은 1ha당 639.2t(2022년 기준)으로 파악됐다. 연간 1만5000km 주행한 승용차 266대가 내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638.4t과 비슷한 수준이다.
양식 중인 장수하늘소 번데기
“곤충 왕국 광릉숲, 장수하늘소 멸종 막을 최후의 보루”
식생 풍부하고 고목 등 환경 조성
매년 15마리 자연방생 ‘복원 작업’
광릉숲의 또 다른 이름은 ‘곤충 왕국’이다.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에 보고된 곤충은 총 2만710종이다. 이 가운데 19%인 3932종이 광릉숲에 산다. 전국에 있는 곤충 5종 중에서 1종이 이곳에 사는 셈이다. 식생이 풍부해 나무가 다양하고, 나무가 죽어 고목이 되면 그 안에 곤충이 모일 수 있는 환경 덕분이다.매년 15마리 자연방생 ‘복원 작업’
산림청이 인공 사육해 성충이 된 장수하늘소가 광릉숲에 방생된 모습. 포천=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광릉숲에서 처음 발견돼 이름에 ‘광릉’이 붙은 곤충도 있다. 2017년 3월 서어나무 고사목에서 광릉왕맵시방아벌레 10여 마리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견됐다. 맵시방아벌레류는 서어나무에서 성충 상태로 겨울을 나는데, 그동안 일본 산간 지역에서 발견돼 일본 특산종으로 알려졌다가 국내 서식이 확인됐다. 맵시방아벌레는 소나무재선충병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 유충을 잡아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릉왕모기는 다른 모기에 비해 몸집 크기가 두 배 이상 크다. 애벌레(장구벌레)는 나무구멍이나 지표면의 고인 물에 서식하며 다른 모기의 유충을 잡아먹고 자라 ‘모기를 먹는 모기’로 유명하다. 초록하늘소는 1986년 광릉 채집 기록 이후 29년 만인 2016년에 다시 발견됐다.
이처럼 광릉숲에는 환경부에서 지정한 멸종위기종 281종 가운데 21종이 서식한다. 조류 6종, 곤충류 6종, 포유류 4종, 파충류 2종, 양서류, 육상식물, 고등균류(버섯) 각 1종씩이다. 산림 생태계 안정에 필요하고 학술적 가치가 높아 우선 보호해야 하는 특별산림보호대상 53종 가운데 광릉골무꽃, 참작약 등 식물 2종과 노란달걀버섯, 산호침버섯, 연기색만가닥버섯, 잎새버섯, 자흑색불로초, 차가버섯 등 버섯 6종이 광릉숲에서 자란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
▽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