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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링컨, 러 본토 타격 허용 시사…美, 확전 우려에도 결국 입장 바꾸나

입력 | 2024-05-30 10:58:00

미군의 ATACMS 지대지미사일이 발사되는 모습. (합동참모본부 제공) 2022.5.25/뉴스1


우크라이나가 서방 지원 무기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면서 이에 반대하는 태도를 보였던 미국에서도 정책 변화 기조가 감지됐다.

미국 국무부는 물론 백악관에서도 무기 사용 제한 해제를 시사하는 발언이 나오고 정부 내에서도 관련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는 모양새다.

다만 이를 의식한 러시아가 거듭 ‘레드라인’을 넘지 말라며 전술핵무기 훈련까지 시작하는 등, 확전 우려가 커지면서 미국이 어디까지 허용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2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은 이날 몰도바 키시너우에서 마이아 산두 몰도바 대통령과 함께한 기자회견에서 “조건과 전황, 러시아의 전략 변화에 따라 적응하는 것이 지난 2년간 우크라이나에 대한 우리의 지원 방식이었다”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변화에) 적응하고 조정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미국이 러시아 영토에 대한 공격을 장려하거나 허용한 적은 없다면서도 우크라이나가 “자국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최선의 방법에 대해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하며 우리는 이를 위해 필요한 장비를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WSJ은 “조 바이든 행정부 고위 관리가 미국이 정책 전환을 고려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라고 봤다.

NYT도 이를 두고 사실상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산 무기로 러시아 본토 공격을 허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진단했다.

블링컨 장관의 발언 직후 백악관에서도 의미심장한 장면이 연출됐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현재 러시아 타격 불허 정책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은 적절하게 진화해 왔다”라며 정책 변화 가능성을 암시했다.

그동안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수조 원에 달하는 무기를 지원하면서도 러시아와의 정면충돌을 우려하며 러시아 본토 타격은 금지해 왔다.

하지만 최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에 계속 밀려 전황을 뒤집을 방안이 절실해지면서 우크라이나는 물론 서방에서도 이러한 무기 사용 제한을 해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빗발치고 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최근 연이어 우크라이나가 서방 지원 무기로 러시아 본토를 타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이러한 제한 조치를 해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이에 더해 마크롱 대통령이 처음 불을 지핀 ‘우크라이나 파병론’ 또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인접한 폴란드와 발트해 연안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도 가능성을 살려두고 있다.

게다가 미 하원 정보위원회도 최근 초당적으로 미 국방부에 서한을 보내며 제한 조치를 해제해달라고 촉구하면서 바이든 정부는 전방위적인 압박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결국엔 미국도 무기 사용 제한을 해제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NYT는 이와 관련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들은 전쟁의 기세가 러시아로 이동했음을 알고 대통령에게 (정책 변경을) 공식적으로 건의하고 있다”라며 “대통령 고문 중 일부는 입장 반전이 불가피하다고 믿는다”라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미국 관리들은 우크라이나의 곤경에 공감한다고 말한다”라며 “행정부 관리들은 러시아 내부를 공격하기 위해 무기 사용 제한을 해제할지 여부를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이를 의식하며 연일 경고를 날리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서방 무기로 러시아 영토를 공격하는 행위는 서방이 전쟁에 직접 개입하는 셈이라며 ‘심각한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또 러시아는 전술핵무기 훈련에 실제로 돌입해 이번 전쟁에서 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내면서 ‘세계 3차대전’에 대한 공포도 심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확전 우려가 과장됐다는 입장이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 교수는 NYT에 러시아의 전술핵 훈련이 일종의 “과장된 위협”(rattling the nuclear saber) 이라며 “지금 벌어지는 것은 핵 협상 게임이자 신뢰 게임이다”라고 진단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분석가 세스 존스는 “러시아 본토 타격에 대한 우려는 잘못됐다”라며 “러시아 내 목표물을 공격하도록 허용한 영국과 다른 나토 국가들에 대한 (러시아의) 반발은 없었고 전쟁 발발 이후 푸틴 대통령의 확전 위협은 공허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앞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무장관은 자국이 지원한 스톰 섀도를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본토 타격에 사용해도 좋다고 발언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에도 미국 정부 내에서는 여전히 러시아와의 정면충돌에 대한 우려가 남은 분위기다.

이 때문에 미국이 러시아 본토 타격을 허용한다고 해도 러시아 내부 군사 표적으로만 이를 제한하고 영토 깊숙한 곳이나 핵심 인프라 등은 공격하지 못하도록 할 가능성이 높다고 NYT는 짚었다.

실제로 최근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본토의 핵무기 경보시스템을 공격한 일과 관련해서도 미국 정부 내에서 현명한 결정이 아니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미국 관리는 WP에 이번 공격으로 “러시아가 핵 탐지 능력이 약화됐다고 생각해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라며 “미국은 러시아에 핵무기를 사용할 의도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