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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협상’ 주역 갈루치,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는 “韓 안보 고려 않은 나쁜 생각”

입력 | 2024-05-30 19:11:00


“한국 안보 상황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나쁜 생각’이다.”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명예교수는 최근 공화당이 미 전술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를 공론화하고 나선 것에 대해 30일 이같은 의견을 밝혔다. 갈루치 교수는 북한 핵개발 초기였던 1993년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미국 수석 대표로 북한과 협상했던 주역이다.

● “트럼프 재집권시 韓·日 독자 핵무장 시도 가능성 높아”

갈루치 교수는 30일 제주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하는 건 한국, 북한, 심지어 미국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한국에 미 전술핵무기가 배치될 경우 북한이 이를 선제 타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한국의 안보상황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것. 이는 대량 살상무기의 확산을 막고자 하는 미국에게도 “나쁜 아이디어”라고 그는 밝혔다. 갈루치 교수는 이달 29일부터 31일까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협력’이란 주제로 제주에서 열린 ‘제주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30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갖는 로버트 갈루치 교수. 제주포럼 제공.


갈루치 교수는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미국 측 수석 대표를 맡아 북한과의 협상을 이끌었다. 협상 결과 1994년 10월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는 대가로 경수로 원자로를 지원하는 ‘제네바 합의’가 탄생했다. 하지만 이 합의는 2002년 10월 북한이 고농축우라늄을 활용해 핵 개발을 한다는 미국의 의혹 제기 등으로 파기됐다.

갈루치 교수는 “북한은 6차례의 핵실험을 거쳐 핵무기를 갖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고, 각종 미사일도 보유 중”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한다면 북한이 이를 선제 타격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고 했다. 이어 그는 한미 간에 “핵 공유에 가까운 핵협의그룹(NCG)을 가동하기로 약속했다”며 미국이 한국에 제공 중인 ‘핵우산’을 통해 충분히 북한을 억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갈루치 교수는 올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돼 재집권할 경우에는 “한국과 일본 등의 동맹국이 독자 핵무장을 시도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내다봤다. 그는 “(동맹국으로서는) 그의 안보 공약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미·미일 동맹에 대해 “조약과 국익에 기초한 동맹”이라며 “미국의 전반적 여론은 동맹을 중시하고 있기에, 트럼프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 “‘강대강’으로 맞서다 보면 오판에 의한 핵전쟁 발생 가능성”

갈루치 교수는 한국과 미국이 북한에 대해 ‘강대강’ 억제만을 강조할 경우에는 북한의 오판이나 실수로 동북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북한과의 소통 필요성을 강조했다.

앞서 그는 올 1월 외교·안보 전문지인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2024년 동북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최소한 염두에는 둬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 글에서 “미국은 진정으로 (북한과) 관계 정상화를 추구하고, 비핵화를 첫단계가 아닌 장기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갈루치 교수는 ‘동북아 핵전쟁’을 언급한 이유에 대해 “북한이 적대적 발언과 행동을 이어가고, 한미도 ‘행동 대 행동’으로 맞서다 보면 핵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은 핵을 포기하기 위한 대화나 협상을 일절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하려면 남북, 북미 관계를 개선해 북한이 안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지 한미가 일방적으로 비핵화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방법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미 가진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없지만, 더 이상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는데는 동의할 수 있다”며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동결하고 감축하는 대신 외교관계를 정상화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만 현실적으로 비핵화의 진전이 있다”고 제안했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