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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꿎은 원망[이준식의 한시 한 수]〈266〉

입력 | 2024-05-30 22:54:00


갈매기, 해오라기와 원앙이 같은 연못에 살다니 저들은 날개가 서로 안 어울린다는 걸 알아야지.
봄의 신, 꽃을 위해 주인 노릇 못할 바엔 차라리 연리지가 안 자라나게 했어야지.
(鷗鷺鴛鴦作一池, 須知羽翼不相宜. 東君不與花爲主, 何似休生連理枝.)

―‘근심(수회·愁懷)’ 주숙진(朱淑真·약 1130∼1185)




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 길 없는 시인, 연못에 한데 모여 사는 새 무리와 나뭇가지에 아슬아슬 매달린 꽃을 바라보며 제 처지를 곱씹는다. 새는 날갯짓을 나란히 할 수 있는 무리끼리 어울려야 오래, 그리고 멀리 함께 날 수 있는 법. 그런 새들끼리는 같은 연못에 머무는 게 축복일 것이다. 하지만 갈매기나 해오라기 등은 애당초 원앙류와는 어울릴 수 없는 부류, 한 공간을 공유하는 게 서로 낯설고 불편할 터다. 연리지(連理枝)는 두 그루의 나무에서 뻗은 가지가 하나로 뒤엉킨 형상을 한 나뭇가지, 그 연리지에 화사한 꽃들이 피어나자 비바람이 몰아친다. 꽃을 시기하여 낙화를 재촉한다. 이럴 바엔 뭐하러 연리지를 키웠나. 시인은 봄을 주관하는 신이 외려 원망스럽다. 자신의 결혼 생활에 적색 신호가 들자 시인은 부부의 애정을 상징하는 원앙과 연리지를 떠올렸고, 이 자연의 조화(造化)가 일그러지자 원망의 화살을 애꿎은 봄의 신에게 날렸다.

주숙진은 성리학자 주희(朱熹)의 질녀로 알려진 남송의 재녀(才女). 말단 벼슬을 하던 남편의 학대를 견디지 못해 혼자 수도 변경(汴京)으로 와 한 재상 부인의 집에 기거하며 적지 않은 작품을 남긴 불운의 여류시인이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