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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다르게 가는 곳에서의 ‘공간모험’[정성갑의 공간의 재발견]

입력 | 2024-05-30 23:00:00


새로 낸 책 ‘건축가가 지은 집’ 북토크를 위해 충북 제천에 다녀왔다. 나의 첫 번째 책인 ‘집을 쫓는 모험’ 북토크를 계기로 훅 가까워진 경신 씨와 치형 씨가 운영하는 책방의 이름은 ‘안녕, 책’. 너른 마당 한편에 있는 삼각 지붕의 책방인데 창밖으로 시골길의 한가한 풍경이 보이고 주인이 알뜰살뜰 큐레이션한 책이 단정하게 진열돼 있어 갈 때마다 기분이 좋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국도를 타고 쉬엄쉬엄 운전해 도착한 그곳에서 신기한 기분을 경험했다. 오후 5시쯤 도착해 서로 요란한 인사를 나누고 내 집인 양 집 안으로 들어갔는데 치형 씨가 부스스한 얼굴로 동파육을 만들고 있었다. 몇 시간이고 푹 졸이는 게 관건이라는데 이미 그 앞에서 몇 시간을 보낸 듯 나른한 얼굴이었다. 마당에서는 두 부부의 귀여운 아들 하준이가 친구와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저렇게 원 없이 뛰어노는 아이들 모습을 보면 내 마음이 다 편안해진다. 마당을 보니 흰색 마거릿이 보기 좋게 군락을 이뤄 이곳저곳에 환하게 피어 있었다. 경신 씨 말이 미치도록 잘 번지는 꽃 세 가지가 있는데 마거릿이랑 금계국, 수레국화라고. 카페 하는 친구가 나눠줬다는 ‘신상’ 요구르트를 몇 개나 까먹고 좋아하는 등받이 의자에 앉아 다리를 쉬고 있으니 ‘하, 좋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1시간 후면 북토크가 시작인데도 경신 씨는 여전히 아내와 밀린 수다를 떨고 있고 치형 씨는 멈춤 화면처럼 동파육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고 하준이는 고양이들과 섞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고 있고…. 서울과는 다른 시간대 세상 속으로 들어온 것만 같았다. 아, 이런 순간이 아인슈타인이 말한 상대성 이론인가, 하는 생각까지 든 걸 보면 나름의 생생한 실감이었다.

북토크가 끝나고는 경신 씨, 치형 씨 친구들과 다시 우르르 한자리에 모여 동네잔치 같은 저녁 시간을 보냈다. 다들 수시로 이 집에 모여 여름휴가를 보내고, 며칠씩 놀고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라 분위기가 여름 휴가의 저녁 식사 자리처럼 편안했다. 오늘 아침 경신 씨가 한 주간지와 인터뷰를 했는데 ‘인구소멸지역인 제천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것에 대하여’가 주제였다고. 실제 제천 인구는 여느 다른 중소도시처럼 줄어드는 추세인데 그 수가 모든 걸 의미하는 것만도 아닌 것이 내려오는 사람이 많지 않아 그렇지 일단 시골에 내려오면 마음이 편해 다들 아이를 갖는다고. 중소도시에서 사는 삶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 주변에 맹렬하게 달려가는 사람들이 없으니 내 삶의 속도도 찬찬히 안정을 찾게 된다고. 옛날에는 집을 떠나 인근 도시로 ‘유학’을 가면 아직 어린 나이에 버스를 타고 혼자 집을 찾아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시간을 통해 처음으로 어른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면 ‘톰 소여의 모험’이나 ‘허클베리 핀의 모험’도 다 ‘공간 모험’에 관한 이야기 아닌가. 새로운 세상을 통해 성장하고 단단해지는 이야기. 현대사회에서는 그런 공간의 모험 자체가 애, 어른 할 것 없이 어려워지는 것 같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그곳에서의 시간이 기쁘고 깊은 여운으로 남아 있다. 언젠가 나도 그런 시간 속에 들어가 살아야지, 독백 같은 다짐도 하게 된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