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영 국제부장
2021년 11월 6일. 미국 공화당 프레드 업턴 하원의원(71)의 사무실에 음성메시지가 쏟아졌다. “빌어먹을 배신자. 당신이 죽으면 좋겠어. 가족까지 모두.”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업턴은 전날 밤 하원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야심작인 ‘인프라법’에 찬성표를 던진 공화당 의원 13명 중 1명이었다. 투표 직후 같은 당 마저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50)은 X(옛 트위터)에 ‘반역자(traitor)’라며 동료 13명의 사무실 전화번호를 올렸다. ‘좌표찍기’였다. 그린은 음모론과 막말을 일삼아 ‘하이힐 신은 트럼프’라 불리는 인물이다.
정치폭력에 의회 떠나는 정치인들
업턴은 그해 하원이 ‘1·6 의사당 난입 사태’를 선동한 혐의로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표결에 부쳤을 때도 찬성했다. 그때 이미 신변 위협으로 자택 밖에 동작 감지 카메라를 설치했고, 일정을 대중에게 공지하는 일을 중단했다. 사무실에는 누군가 침입하면 보좌진과 함께 탈출할 수 있도록 추가 출구도 마련했다. 하지만 위협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업턴은 결국 그린의 좌표찍기 5개월 뒤 여정을 끝내겠다고 선언했다.
업턴이 불출마 회견을 하던 2022년 4월 5일. 그의 옆에는 동갑내기 민주당 하원의원 데비 딩겔이 함께했다. 딩겔은 직후 성명을 냈다. “모든 문제에서 합의하진 못했어도 우리는 항상 저열한 수사나 표현 없이도 의견 차이를 좁힐 수 있었다.” 업턴은 ‘구식 정치인’이었다. 의회 성경공부 모임에서 쌓은 우정으로 민주당 의원들을 공략했다. 필요한 의제다 싶으면 수십 차례 얼굴을 맞대 초당적 법안을 만들고, 전국을 함께 다니며 지지를 모았다.
하원 미중전략경쟁특별위원장이던 마이크 갤러거(40)도 지난달 의원직을 내려놓았다. 상원 진출이 확실시되던 공화당 차세대 주자였다. 올 2월 공화당은 하원에서 바이든 행정부에 ‘매운맛’을 보여주자며 국토안보부 장관 탄핵안 표결을 밀어붙였다. 갤러거는 반대표를 던졌다. 장관을 정치적 이유로 탄핵한 전례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이 전후로 살해 위협과 심야 ‘스와팅(swatting)’에 시달렸다. 911에 허위 신고해 ‘먹잇감’의 집 앞에 무장경찰을 출동시키는 신종 정치폭력이다. 갤러거에게는 두 살, 네 살 난 딸이 있다.
좌표찍기, 신상털기, 문자폭탄은 정치를 바꾼다. 일회성 소동이 아니다. 정치인과 그의 가족을 겁에 질리게 해 소신과 다른 표결을 하게 하고, 다시 출마할 마음을 접게 한다. 정치인이면 그런 위협쯤은 견뎌야 한다고 할 수 있다. 틀린 말도 아니다. 하지만 묻겠다. 당신이라면 가족에 대한 모욕과 신변 위협을 감수하며 정치를 하겠는가. 건전한 상식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 정치판에 오지도, 머물지도 못하게 하는 게 정치폭력이다.
22대 국회, 어떤 토양 만들 것인가
좌표를 찍은 ‘그린’은 남았고, 좌표가 찍힌 ‘업턴’은 떠났다. 말 그대로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했다. 그만큼 주목을 끌어 정치자금을 모으고, 지도부 입성이나 재선을 노리는 ‘빌런’은 늘었다. 미 의회만의 모습일까. 30일 개원한 22대 국회, 강성 팬덤을 등에 업은 의원들이 대거 입성했고, 거야 민주당은 아직 ‘국회의장 후보 경선 사태’ 여파에 휩싸여 있다. 4년 뒤 우리는 ‘업턴’을 또 얼마나 떠나보낼 것인가. 4년간 세금으로 키워 낸 인물을 지키는 것도, 진짜 ‘국민 인재’를 모셔 오는 것도 지금부터 만들 정치문화에 달렸다.
홍수영 국제부장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