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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칼럼]한동훈, 5년 더 기다려야 한다

입력 | 2024-05-30 23:21:00

尹에 절망한 보수층, 韓 열렬 지지하지만
국민이 두 번 연속 검사대통령 선택할까
超엘리트·기득권 이미지 극복도 시간 필요
보수의 귀한 자산, 길게 보고 숙성 거쳐야



이기홍 대기자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보수진영의 귀한 자산이다.

왼쪽을 보면 위선과 거짓의 표본 같은 삶을 살아온 포퓰리스트 범죄혐의자들이 정권 장악을 목전에 둔 듯 기세를 올리고, 오른쪽을 보면 오만한 리더십이 국가 최고지도자 자리를 망각한 채 자기 부인 감싸기를 국정 성공보다 우선시하는 절망적 현실에서 보수층 상당수가 한동훈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당연한 현상일 수 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2027년 대선은 한동훈의 시간이 되기 어렵다.

그 이유는 첫째, 국민이 두 번 연속 검사 대통령을 뽑아줄 가능성이 크지 않으며 둘째, ‘가진 자·기득권·귀족 엘리트’ 이미지를 탈피하기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동훈이 대선 무대에 오르면 야당과 좌파는 ‘2기 검찰정권’ 프레임으로 맹공을 퍼부을 것이다. “예전엔 군군(軍軍)이더니 이젠 검검(檢檢) 하겠다는 거냐”며 자극할 것이다.

‘검찰 독재’ 선동에 고개를 젓는 이성적 국민들도 검사 스타일 리더십에는 진저리를 치게 된 게 현실이다. 정무감각 결핍, 오만한 언행, 일방적 메시지 전달, 엘리트 의식, 일단 잡아들인 뒤 용의자를 좁혀가듯 먼저 던져놓고 뒷수습하는 정책추진 방식…. 지난 2년 동안 민낯을 드러낸 이런 리더십 중 상당 부분은 개인의 캐릭터 탓일 수 있는데도 국민은 ‘평생 검사만 했기 때문에 저런다’는 인식을 갖는 게 현실이다.

5공 청산 이후 육사 출신들이 “선배들 잘못 때문에 최소 한 세대 이상은 걸러야 한다. 정치 근처에 가지도 말라”고 스스로를 옥죄었듯이, 한동훈은 대신 속죄하듯 고개를 숙여야 한다. 검사 출신이라는 굴레가 사라지려면 그런 노력이 쌓이고 쌓여야 한다.

지난 총선 때 야당 내에선 한동훈의 타워팰리스 거주, 처남(전직 검사) 문제 등을 집중 공격하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나중에 써먹자”며 미뤘다.

좌파의 그런 행태야 상수(常數)로 여긴다 해도 두뇌 지위 재산 집안 등 모든 걸 갖춘 채 갑(甲)으로 살아왔다는 이미지는 한국 사회에서 대권 쟁취에 상당한 족쇄가 될 수 있다.

‘저 사람이 진정으로 우리 을의 입장에 공감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풀어줘야 한다. 당 대표나 대선후보 자리에 앉아 양극화, 서민, 민생의 아픔을 아무리 얘기해도 국민의 가슴에 와닿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런 허들을 넘으려면 오랜 시간 민생 곁에 뒹굴며 공을 들여야 한다.

정무감각 제로 대통령을 겪으면서 국민은 정치 초보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달았다. 의원은 정치에 뛰어들자마자 할수 있어도 대통령은 다르다. 장군(제너럴)이 되면 병과가 없어지듯 대통령은 종합적 판단과 통찰을 할 수 있는 경륜이 필수적이다.

한동훈은 젊다. 서민을 위한 무료 변론 활동을 하거나 보궐선거 또는 시도지사 선거에 나가 재선의원이나 재선 시도지사로 정치 행정 경륜을 쌓아도 2032년 대선 때 59세에 불과하다.

한동훈은 최근 지인들에게 고령운전자면허, 의대 증원 논란 등을 거론하며 “전통적 지지 기반이 다 허물어지고 있다. 당이 막아줘야 하는데 그걸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당 대표 출마를 시사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과는 화해가 어려울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사실 누가 대표가 되든 대통령과의 긴장 관계는 불가피하다.

새 당 지도부는 대통령에게 김건희 여사 문제를 국민 눈높이에 맞게 공정하고 엄중하게 처리하고, 특별감찰관을 임명하고, 정권 내 여사 라인을 쳐내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요구를 윤 대통령이 국민의 뜻으로 받아들여 수용한다면 정권 성공의 에너지가 생기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커보이지는 않는다.

대통령과 여사 라인은 당 대표가 대권 욕심에 저런다며 반발하고 친윤계가 난리칠 것이다. 코끼리들이 싸우면 잔디가 뭉개지듯 보수진영이 풍비박산 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당이 이런 최소한의 민의마저 관철시키지 못하면 보수진영의 미래는 없다.

그러므로 새 지도부는 대통령 부부가 반발할 명분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사람들로 꾸려져야한다. 최악의 충돌 상황을 피하면서도 윤 대통령을 부인 감싸기에서 탈피해 정상 코스로 견인하려면 대권 등 다른 욕심 없이 오로지 보수 재건에만 헌신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도봉갑 김재섭 의원처럼 아주 새로운 인물이거나, 그런 새 얼굴을 찾기 어렵다면 아주 노련하고 정교한 관리자가 필요하다.

어정쩡한 대권 주자들, 얼굴만 많이 알려졌을 뿐 혁신 이미지는 없는 낡은 중진 정치인들로선 가망이 없다. 게다가 대선주자는 당헌당규상 대선 1년 6개월 전에는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므로 2년 대표 임기 중 절반 밖에 못 채운다.

흔히들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한다. 평생 한번 밖에 안 온다”는 말을 한다. 한동훈 주변에서도 그런 말로 부추길 것이다. 때가 무르익지 않았는데도 서둘러 나섰다 실패한 이들의 선례를 보면 대개는 주변의 부추김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한동훈 주변에도 비공식 정무팀이라 할 만한 도움을 주는 그룹이 있다. 장인(진형구 전 대전고검장)의 고교 동문이며 안기부 고위 간부를 지낸 원로급 인물, 정치부 기자 출신 인사 등이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기회는 한 번밖에 오지 않는다는 말은 자체 발광 능력이 없는 사람이 운좋게 바람을 탔을 때의 경우에만 맞는다.

한동훈은 보수 정치인으로선 이례적으로 상당한 팬덤을 갖고 있고 스타 정치인이 될 여러 매력 포인트를 지녔다. 국가 미래를 위해 어떤 지도자가 될 것인지 고심하는 모습, 진정으로 서민의 삶에 다가가는 모습을 통해 숙성 과정을 거쳐 단단해진다면 기회는 언제든 온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정치적 기술이나 특장점 한두 개만으로 쟁취되지 않는다. 역사 앞에 겸손하며 국민의 요구가 절실하고 충만할 때만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