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총장-마크롱 이어 허용 시사 백악관 “現정책 유지” 신중 반응 바이든, 내달 유럽서 입장 낼수도 “러, 나토 보복 등 확전 위험” 우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29일 옛 소련에 속했으며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몰도바 브럴리아의 발전소에서 연설하고 있다. 친서방 정권이 집권한 몰도바는 최근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블링컨 장관은 미국 무기를 사용해 러시아 본토를 타격하는 방안을 허용할 뜻이 있음을 시사했다. 브럴리아=AP 뉴시스
유럽 지도자들 사이 우크라이나가 서방 무기를 활용해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도록 허용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미국이 이를 허용할 수 있음을 시사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우크라이나의 최대 지원국인 미국이 본토 타격을 허용하면 전쟁이 러시아 내부로 강도 높게 번질 수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 대한 러시아의 보복을 부르며 핵 보유국인 러시아와 서방의 전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물론 러시아 본토 타격이 실제로 허용될지는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 미 백악관에서도 찬반양론이 거세게 부딪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열세가 확연해진 우크라이나의 패배 시 책임론과 러시아와의 전면 대결 모두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이다.
● 美, ‘러시아 본토 타격 허용’ 첫 시사
실제로 이날 현장에서 한 기자가 “적응과 조정은 우크라이나가 결정하면 러시아 본토 타격도 가능하단 얘기냐”고 묻자, 블링컨 장관은 “맞다”고 답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시아 본토 타격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진 않았지만, 이를 수용할 수도 있다는 시그널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쪽 모두에 보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블링컨 장관의 발언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전날 공동 기자회견에서 “서방 무기를 활용한 러시아 군사기지 타격을 허용해야 한다”고 발언한 직후 나왔다. 최근 유럽에선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교장관 등이 잇따라 비슷한 주장을 내놓았다.
미국에서도 백악관에 ‘금기’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29일 전직 관료와 학자 60명이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미 지원 무기를 활용한 러시아 본토 공격을 허용해야 한다는 서한을 보냈다. 나토 전 사령관이던 필립 브리드러브 전 주우크라이나 미국 대사 등도 동참했다.
● 바이든, 유럽서 전략 수정 메시지 내나
일각에선 바이든 대통령이 다음 달 6일 프랑스에서 열리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80주년 기념식과 이탈리아에서 예정된 13∼15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전략 수정을 시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나토 창설 75주년을 맞아 동맹국의 단결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이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 대통령은 무기 사용을 허용하더라도 우크라이나 공격과 직접 연루된 러시아 국경 군사목표물로 무기 사용을 제한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제한적으로 허용하더라도 전쟁은 러시아 본토로 강도 높게 확전될 가능성이 있다. NYT는 “미국이 (러시아에서) 무기 사용을 승인하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내부에 엄폐한 포병과 미사일 기지를 반격할 수 있게 된다”고 분석했다.
이럴 경우 전쟁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최근 전술핵무기 훈련을 실시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8일 서방이 러시아 내부 공격을 허용하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확전 가능성을 경고했다. 영국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러시아 싱크탱크인 외교국방정책협의회의 드미트리 수슬로프 의원은 푸틴 대통령에게 서방을 위협하기 위해 ‘시범적으로’ 핵폭발을 고려할 것을 제안했다.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