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년 현재 남은 식량’ 적혀있어 “멸망 직전인 657년까지 문서 작성 익산, 수도 버금가는 도성이었을것”
익산토성 발굴 현장에서 나온 봉축(문서 색인 막대기) 상단. 적외선 촬영으로 ‘丁巳 今在食’(정사년 현재 남아있는 식량)이란 글자가 보인다.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제공
전북 익산토성에서 백제시대 두루마리 문서 색인인 ‘봉축(棒軸)’이 발굴됐다. 일본 고대 유적에서 비슷한 게 나온 적이 있지만 국내에서 발견된 건 처음이다. 더구나 ‘정사(丁巳)년’ 연도까지 적혀 있어 무왕에 이어 의자왕 때도 익산이 복도(複都·수도에 버금가는 도성)로 기능한 흔적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는 국가사적인 익산토성 발굴 현장에서 백제시대 대형 집수시설(동서 9.5m, 남북 7.8m, 최대 깊이 4.5m)과 더불어 그 내부에서 봉축과 옻칠갑옷(가죽 조각에 옻칠을 해 이어 붙인 갑옷) 조각이 발견됐다고 30일 밝혔다. 이번에 발견된 봉축 1점은 지름 2.3cm, 길이 15cm의 긴 원통형 막대기 모양이다. 봉축은 두루마리 문서를 보관할 때 종이 끝에 풀칠을 해서 붙이는 일종의 심이다. 봉축 상단에는 문서 종류 등을 쓴 글자를 넣어 굳이 두루마리를 펴지 않고도 내용을 알 수 있도록 했다.
이번에 발견된 봉축 상단에서는 ‘丁巳 今在食’(정사년 현재 남아있는 식량)이라는 글자가 판독됐다. 주위에서 백제 토기 등이 함께 발견된 정황을 미뤄 볼 때 여기서 정사년은 597년 혹은 657년 중 하나를 의미할 것으로 추정된다. 현장을 둘러본 고고학자들은 이 중 657년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는 백제 멸망 3년 전까지 성안에 남아있는 식량을 확인해 문서화한 사실을 보여준다. 이문형 원광대 교수(고고학)는 “익산 천도를 단행한 무왕뿐만 아니라 멸망 직전인 의자왕 대에도 익산에서 문서행정이 이뤄지는 등 복도로서의 위상이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근거”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발견된 백제 집수시설 안에서는 고대 사치재 중 하나인 옻칠갑옷 조각도 6점이 나왔다. 공주 공산성과 부여 관북리유적에 이어 세 번째다. 이번 출토품은 공산성 갑옷과 형태나 제작 방식이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공산성 갑옷이 당나라 제작품이라는 일각의 지적과 달리, 백제가 자체 제작한 물품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병호 동국대 교수(백제사 전공)는 “이번 발굴은 일본에서 이미 확인된 봉축 목간이 한반도에도 존재했음을 확인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일본 고대 목간의 원류로서 백제 문서행정 시스템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