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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이럴 수 없다”…판사가 꾸짖은 ‘최태원 편지’

입력 | 2024-05-31 11:12:00

최태원 SK그룹 회장·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뉴시스


항소심 재판부가 최태원 SK그룹 회장(64)이 1심의 20배에 달하는 위자료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63)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하며 최 회장의 유책 행위를 조목조목 짚었다.

30일 서울고법 가사2부(재판장 김시철)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 원, 재산분할로 1조3808억1700만 원을 현금으로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022년 12월 1심을 맡은 서울가정법원 가사합의2부(부장판사 김현정)가 인정한 위자료 1억 원, 재산분할금 665억 원보다 20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

재판부는 최 회장과 동거인인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의 관계가 2008년 11월 이전에 시작됐을 수 있다고 봤다.

김 이사장은 2008년 11월 이혼했는데, 같은 시기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보낸 자필 편지를 보면 “내가 김희영에게 이혼하라고 하고 아이도 낳게 했다. 모든 것이 내가 계획하고 시킨 것”이라고 적혀있다.

재판부는 “이 기재 내용은 혼인관계의 유지·존속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고 결정적”이라며 “만약 최 회장이 노 관장과의 혼인 관계를 존중했다면 도저히 이럴 수가 없다”고 질책했다. 그러면서 최 회장이 재판 과정에서 신앙을 거론하며 ‘김 이사장 이혼 소송에 관여하지 않았다’며 배치되는 주장을 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최 회장이 과거 횡령 사건 공범인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을 통해 김희영 이사장을 취직시킨 점도 언급했다. 재판부는 김 이사장이 2008년 미국에서 진행된 이혼 판결문 직업란에 김원홍 전 고문의 투자 기업을 적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은 2009년 5월부터 부정행위가 시작됐다고 주장하지만, 이보다 일찍 부정행위가 시작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최 회장이 세 자녀에게도 편지로 김 이사장과의 관계를 공개하며 “너희는 잘못도 없는데 나 때문에 피해를 봤다. 너희 엄마도 피해를 보게끔 행동했다”고 적었다고 전했다.

재판부는 “2009년 5월 노 관장이 암 진단을 받은 것을 보면 최 회장의 행동 자체가 노 관장에게 정신적 충격을 줬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이 2015년 김 이사장과의 혼외 자녀 존재를 외부에 알리는 과정에서도 유책 행위가 있다고 재판부는 봤다. 재판부는 “노 관장과 혼인 관계가 해소되지 않았는데도 김 이사장과의 공개적 활동을 지속해 마치 유사 배우자 지위에 있는 태도를 보였다”며 “이와 같이 상당 기간 부정행위를 지속하며 공식화하는 등 헌법이 보호하는 일부일처제를 전혀 존중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 사건 소송 초반엔 경제적 지원을 하다가 2019년 2월부터는 신용카드를 일방적으로 정지시키고 1심 이후에는 현금 생활비 지원도 중단했다”며 최 회장이 노 관장의 부양의무도 이행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 재판부는 SK이노베이션이 노 관장에게 서울 종로구 서린빌딩 퇴거를 요구하는 소송을 내는 반면, 상당한 돈을 출연해 김 이사장과 티앤씨재단을 설립하는 대비되는 상황을 연출하면서 노 관장에게 정신적 고통을 줬을 것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최 회장은 노 관장과 별거 후 김 이사장과의 관계 유지 등으로 가액 산정 가능 부분만 해도 219억 원 이상을 지출하고 가액 산정 불가능한 경제적 이익도 제공했다”며 “혼인 파탄의 정신적 고통을 산정한 1심 위자료 액수가 너무 적다”고 판단했다.

이혜원 동아닷컴 기자 hye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