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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돈이 된다[조영준의 게임 인더스트리]

입력 | 2024-05-31 16:03:00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 또는 그런 생각. ‘추억’에 대한 사전적 정의입니다. 보통 과거에 좋았던 일들을 회상하는 데 많이 쓰는 말입니다. 그리고 과거의 좋았던 경험에 기반한 특성상 추억은 돈으로도 살 수 없다고도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이를 게임 시장에 대입해 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최근 몇 년간 게임 시장에 추억의 레트로 게임의 리마스터 혹은 리메이크 열풍이 불면서, 성인이 된 이용자들이 어린 시절에 즐겼던 게임들이 대거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돈을 쓰면 어린 시절 즐겼던 추억의 게임이나 게임기를 그 시절 그대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과거의 추억을 그저 간직하는 것이 그치지 않고 현재 진행형으로 바꿀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추억이 돈이 되는 시장이 열린 셈입니다.

슈퍼 패미컴 미니 (출처=닌텐도)

●레트로 게임기 복각 열풍…수억 원 게임 팩 등장

지난 2015년 이후로 게임 시장에는 레트로 게임기 열풍이 일었습니다. 80~90년대를 장식한 추억의 게임기들이 복각되어 돌아왔죠. 과거 뚱뚱한 브라운관에 TV에 AV 케이블을 연결하며 즐겼던 이용자들은 최신 TV에 HDMI 케이블을 연결해 그때 그 추억의 게임에 빠져들었습니다. 브라운관 특유의 부드러운 화면이 아닌 LCD의 칼 같은 화면이 다소 어색했지만, 게이머들이 추억에 빠져들게 만드는 데는 큰 문제가 아니었죠.

우리나라에서는 패밀리나 현대 컴보이로 잘 알려진 닌텐도의 패미컴부터 시작해 슈퍼 패미컴이 ‘미니’라는 이름을 붙여 다시 등장했습니다. 특히 이 게임기들에는 각종 게임도 미리 탑재되어 있었는데요. ‘갤러그’부터 시작해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팩맨’, ‘스트리트 파이터 2 터보’ 등 시대를 풍미한 게임이 잔뜩 들어 있었습니다.

국내에서 복각된 재믹스 미니 (제공=네오팀)

이뿐만이 아닙니다. 소닉으로 유명한 세가의 메가드라이브나 오락실용 캐비닛 아스트로 시티를 축소시킨 아스트로 미니 시리즈도 등장해 그 시절 추억을 현실에 소환했습니다. 오락실용 캐비닛 아스트로 시티를 꼭 닮은 외형과 작은 화면으로 만날 수 있었던 3D 격투 게임 ‘버추어 파이터’는 남다른 기분을 전해줬죠. 당시 최신 기술이 접목된 게임을 이제는 이런 작은 기기로도 즐길 수 있게 됐으니까 말이죠.

이 외에도 ‘킹 오브 파이터’ 시리즈 등 유명한 오락실 게임을 다수 보유한 네오지오 진영에서도 네오지오 미니를 선보였고, 격투 게임에 특화한 아케이드 스틱 형태의 게임기까지 준비했습니다. 또 국내의 한 팀은 추억의 게임기 재믹스를 복각하며 국내외에서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우리 돈 약 22억원에 판매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출처=랠리)

과거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게임기들이 복각되어 돌아왔지만, 원본만큼은 못했나 봅니다. 80~90년대 실제 게임기에서 사용한 카트리지가 수십만 원에 달하는 것은 물론 해외에서는 1985년 등장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미개봉 카트리지가 무려 우리 돈으로 23억 원에 낙찰되는 모습까지 나왔습니다. 물론 당시 시세 조작 논란이 일기는 했지만, 추억이 어마어마한 가치를 갖게 된 것입니다.

●리마스터와 리메이크 그리고 클래식

게임 시장에는 리마스터와 리메이크 열풍도 불었습니다. 리마스터와 리메이크는 추억의 게임을 그때 그 시절 모습 그대로 즐기는 것이 아닌 한층 강화된 모습으로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리마스터는 과거 게임의 해상도를 높이거나 사운드를 강화하는 비교적 간단한 형태, 리메이크는 과거 게임을 기반으로 게임을 모두 다시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1편부터 6편까지 더 발전된 그래픽으로 만날 수 있는 ‘파이널 판타지 픽셀 리마스터’와 캡콤의 RE 엔진을 사용해 돌아온 ‘바이오 하자드 RE 2’와 같은 시리즈가 대표적이죠.

돌아온 추억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 (제공=라인게임즈)

아울러 최근에는 추억의 게임을 떠올리는 주기가 짧아지고 더 좋은 기기 성능으로 즐기길 원하는 이용자들이 많아 비교적 최신 작품인 ‘더 라스트 오브 어스’도 출시 이듬해인 14년 리마스터 버전이 발매됐고, 22년에는 리메이크 버전까지 등장해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플랫폼도 플레이스테이션을 넘어 PC로 확장했죠.

국내 게임사들도 추억의 게임 열풍에 가세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에는 국내 게임 개발사인 라인게임즈 레그스튜디오를 통해 국산 대표 RPG IP(지식 재산)인 ‘창세기전’ 시리즈가 재탄생했습니다. 새롭게 돌아온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은 90년대 PC 게임을 즐긴 게이머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결과는 조금 아쉬울 수 있었지만 말이죠.

22년 공개된 아이온 클래식 (제공=엔씨소프트)

게임에 대한 추억은 패키지 게임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라이브 서비스 중인 온라인 게임들도 과거 추억을 살려 과거 버전의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때가 좋았지”라던 게이머들의 바람을 반영해 선보인 결과죠. 전 세계 게이머에게 큰 사랑을 받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클래식’이나 ‘아이온 클래식’이 대표적입니다. 이 게임들은 반짝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새로운 도전도 계속돼야

게임사들의 이른바 ‘추억 팔이’는 올해는 물론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입니다. 출시 30주년을 맞이한 기념비 적인 작품 ‘어스토니시아 스토리‘가 부활을 예고했습니다.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는 1994년 손노리에서 개발해 PC 패키지로 출시한 RPG입니다. 거대한 맵과 매력적인 캐릭터들, 흥미로운 스토리로 방대한 세계관을 선보이며 당시 국산 게임 시장에 한 획을 그었죠. 게임은 2025년을 목표로 개발 중이며, 닌텐도 스위치와 PC 등 멀티 플랫폼을 지원할 계획입니다.

이 외에도 플레이스테이션2을 주름잡았던 공포게임 ‘사일런트힐2’가 리메이크 버전의 출시를 앞두고 있으며, JRPG 팬의 많은 사랑을 받은 ‘드래곤 퀘스트 3’도 HD-2D 버전으로 개발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죠. 정말 다양한 추억의 게임들이 돌아올 예정입니다.

부활을 예고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제공=대원미디어 게임랩

추억이 돈이 된 게임 시장. 일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검증된 과거 게임을 리마스터하고 리메이크하는 것에만 열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신규 IP 개발과 연구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이야기죠. 도전도 계속되는 건강한 게임 시장 생태계를 바라며 이만 마칩니다.



조영준 게임동아 기자 ju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