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석 정치부 차장
#1. 지난해 1월 윤석열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AE) 국빈 방문을 마무리한 뒤 대통령실에선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가 나왔다. 중동 특사를 맡겨야 한다는 ‘역할론’까지 대통령실에서 제기됐다. 이를 보도했더니 “제 정신이냐”는 원색적인 욕설이 담긴 e메일을 받았다.
사후에 알려졌지만 실제로 물밑에서 MB 측 기여가 있었다. 김대기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은 윤 대통령 특사로 UAE로 날아가 양측을 조율하며 MB의 친서를 전달했다.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대통령은 김 실장에게 “반드시 한국에 간다. 가서 MB를 만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바라카 원자력 발전소 한국인 근로자들에게 대통령 시계 100개를 선물했다. 공군 1호기 편으로 공수된 뒤 귀빈 못지않은 정성을 들여 바라카 원전까지 수송했다. 이들의 땀이 한-UAE 신뢰를 담보한다는 존경과 예우로 숫자 100을 담았다. 순방 귀국 후 무함마드 대통령이 한국에 선물한 올리브 나무 1000그루가 신뢰의 증표로 남았다. 올리브 나무는 중동에서 풍요와 번영의 상징이다.
MB 공치사를 하려는 게 아니다. 한 인격을 한 가지 사례나 특정 프레임으로 일반화하고 재단해버릴 때 우리가 놓치게 되는 것들에 대한 얘기다. 당장 MB만 해도 어김없이 ‘범죄자’ 등 원색적 비난을 야권에서 내놓지만 축적한 공과(功過)는 함께 있다. 상대에 대한 극단적 비난과 선동이 아니라 공과를 함께 보는 총체성의 토양이 마련된 뒤에야 비로소 우리는 내가 생각한 모습의 타인이 아닌, 한 인간의 온전한 모습을 바라보게 될지 모른다.
정치권에선 상대 정치 세력이 축적한 경험과 시행착오를 균형 있게 평가하기보다는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상대 진영을 매도해버리는 일들만 반복되고 있다. 극단의 언어가 수반된다. 누군가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귀태’로 비하됐고, 누군가는 ‘재앙’으로 불렸다. 상대를 악마화하는 데 성공하면 정권을 획득하는 길에 가까워지기 때문일 테다. 전직 대통령과 원로의 지혜와 경륜을 잘 활용해 성공담도 실패담도 듣는 환경은 요원해 보인다.
5년 단임제에서 상대를 죽이고 밟아야 정권 재창출이나 정권 교체를 할 수 있는 만큼 상대 정권의 레거시를 무너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지난 정부는 박근혜, 이명박을 구속했고 거대 야당은 대통령 탄핵을 입에 올리며 스텝을 밟아가고 있다. 현 여권에서도 “왜 전 정권 잘못을 캐지 않느냐”는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권력기관도 사정 정국을 굳이 마다할 것 같지는 않다. 서로를 악마화하는 증오와 거부정치만 계속된다면 국민들이 예쁘게 바라보지도 않을 것이고, 미래를 위한 발전도 없을 것이다.
장관석 정치부 차장 j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