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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질 바엔 멈추세요” 234만 유튜버 도티가 공황장애와 번아웃을 이겨낸 방법[BreakFirst]

입력 | 2024-06-03 07:30:00


샌드박스네트워크의 최고 에반젤리스트인 유튜버 ‘도티’가 슬레이트를 들고 카메라 앞에 섰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구글 ID 하나만 있으면.

때는 2013년 10월, 나희선 씨는 구글 계정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유튜브’라는 곳에 영상을 올리면 세계인이 보는 콘텐츠를 만들어 올릴 수 있으니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국내에서는 유튜브가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1억 회의 조회수를 올린 플랫폼’ 정도로 여겨졌으니, 나름 참신한 시도였습니다. ‘일단 1000명만 모아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채널 이름은 ‘도티TV’였습니다.

시트콤처럼 기승전결을 갖춘 게임 콘텐츠에 아이들이 열광했습니다. 하루에 구독자가 4000명씩 늘었습니다. 2017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된 ‘존경하는 인물’ 설문에서 그는 김연아, 유재석, 세종대왕에 이어 4위를 차지했습니다. 2018년에는 국내 게임 유튜버 중 처음으로 구독자 200만 명을 달성했습니다. 11년간 그의 채널에 올라온 동영상은 3400여 개, 누적 조회수는 28억 회에 달합니다.

그러나 그는 의외로 ‘멈춤의 미학’을 말합니다. “멈출 줄 알아야 넘어지지 않고 오래 달릴 수 있다”는 걸 멈춰 선 뒤에야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유튜버 도티’가 아닌 ‘인간 나희선’의 내면에 더 귀 기울이고 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보겸, 아이브 보다 앞선 ‘원조 초통령’은 도티였다. 팬미팅 현장에서 한 초등학생 팬은 ‘도티가 엄마보다 더 좋아!’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왔다. 도티 인스타그램


첫 방송을 한 2013년엔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생소한 시기였는데요.

법조인이 되기 위해 대학 3학년 때 국문과에서 법학과로 전과를 했는데 사법시험이 폐지됐어요. 로스쿨에 가기엔 학비가 너무 비쌌고요. ‘내 삶은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를 고민하다가 입대했어요. 일과가 끝나고 생활관에서 TV를 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는데, 당시 한 채널의 ‘문화를 만듭니다’라는 슬로건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 슬로건에 꽂혀서 방송국 PD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됐죠. 제대 후 닥치는 대로 신문방송학과 수업을 들었는데 그중 한 수업에서 교수님이 유튜브의 생태계에 관해 설명해주셨어요. 구글 계정만 만들면 누구나 영상을 올릴 수 있다고 하셨죠. 마침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유튜브 조회수가 억 단위를 찍어서 난리가 났어요.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왔죠. 그날로 계정을 만들고 게임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어요.

―법조인, 방송국 PD에서 갑자기 크리에이터라는 생소한 일을 하게 된 거네요.

‘나 유튜브 해’라고 하면 ‘그게 뭐야?’라는 질문이 돌아왔어요. 부모님은 자유분방한 제 성격을 알기에 해보라는 반응이었지만 친구들은 걱정을 많이 했어요. ‘좋은 학벌이 아깝지 않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도티는 연세대를 졸업했다) 저 역시 ‘풀타임 유튜버’가 될 수 있을지 확신은 없었지만 ‘내가 누군가의 시간을 책임지고 있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유튜브는 제가 출연자이자 기획자, 편집자, 편성권자잖아요. 제가 모든 걸 컨트롤할 수 있는 이 세계가 너무 재밌었어요.(그는 처음에는 아프리카TV를 중심으로 활동하다 유튜브로 메인 플랫폼을 옮겼다)

샌드박스네트워크를 대표하는 소속 크리에이터들. 시계방향으로 옐언니, 슈카월드, 감스트, 김블루, 곽튜브, 빠니보틀. 샌드박스네트워크 홈페이지 캡쳐



구독자 20만 명을 달성하며 한창 ‘초통령’의 입지를 다지고 있던 1년 차 유튜버 도티는 2014년 10월 디지털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의 기획사 ‘샌드박스네트워크’를 차렸습니다. 지금은 국내에만 40여 개의 MCN(다중 채널 네트워크)이 있지만, 당시엔 CJ E&M이 차린 MCN인 DIA TV가 유일했습니다. 샌드박스는 빠니보틀, 곽튜브, 조나단, 떵개떵 등 330여 명의 인기 크리에이터가 소속된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톱니바퀴처럼 세상 돌아가는 순리가 제 일과 맞아떨어졌어요.
그 순간이 왔을 때 한 땀 한 땀 해나간 거죠.―크리에이터 활동 얼마 지나지 않아 2014년 샌드박스 네트워크라는 MCN을 창업했어요.

제가 유튜브를 한다고 했을 때 걱정하던 사람들에게 ‘너희가 틀렸어’를 증명하고 싶었어요. 2014년 콘텐츠 기업, 크리에이터, 팬 등 수만 명이 모이는 세계 최대 온라인 비디오 콘퍼런스 ‘비드콘’이 미국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디지털 미디어 업계 최대 시장인 북미의 생태계를 두 눈으로 목격하면 제 선택이 맞는다는 걸 체감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영어를 잘하지 못해서 구글에 다니던 친구를 꼬셔서 함께 갔어요. (그는 현재 샌드박스 CEO인 이필성이다.) 비드콘에서 목도한 현실은 상상보다 훨씬 더 압도적이었어요. 1층에선 1인 미디어 관련 기업들의 엑스포가 한창이었고, 2층 키노트 현장에선 구글 CEO가 유튜브 생태계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 역설했고요. 그걸 보고 나서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친구와 회사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 논의하기 시작했죠.

―당시 국내 MCN은 DIA TV 하나였어요. 선례가 없어서 시행착오도 많았을 것 같아요.

말이 좋아 창업자이지, 맨땅의 헤딩이었어요. 당시 소속 크리에이터는 저, 그리고 저와 함께 활동하던 ‘도티와 친구들’ 10명 남짓밖에 없었어요. 게임사를 찾아다니며 신작이 나올 때 저희 채널을 활용해 마케팅해 달라고 부탁했고, 크리에이터들을 만나 ‘함께 일하자’고 설득도 했고요. 발품을 팔며 파트너들을 하나하나 만들어 나갔어요.
과거엔 크리에이터가 저평가됐어요. ‘너희가 뭔데 영상 한 편에 이 돈을 받아? 너희가 연예인이야?’라는 시선이 지배적이었어요. 이젠 크리에이터가 초등생 장래 희망이 됐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존중받잖아요. 그 길을 샌드박스가 열심히 닦아 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미스터 비스트와’ 같은 글로벌 채널 운영자가 조만간 생길 거고, 그 토양을 마련하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유튜버, MCN 창업 모두 당시 생소하던 시장입니다. 남들은 보지 못했던 흐름을 먼저 읽을 수 있었던 방법은 무엇이었나요?

저의 성공은 시대와 운이 잘 맞아떨어진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2013년 강남스타일 신드롬이 없었다면 전 유튜버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크리에이터 생태계가 세계적으로 10년간 엄청나게 성장하지 않았다면 샌드박스도 지금 같진 않았겠죠. 톱니바퀴의 아귀가 맞아떨어진 것처럼, 세상이 돌아가는 순리가 제가 하는 일과 맞아떨어졌어요. 다만 그 순간이 왔을 때 최선을 다해서 한 땀 한 땀 해 나간 건 있어요. 그 노력들이 회사엔 업력이 됐고, 개인에겐 경험이 됐다고 생각해요.

2018년 1월 국내 게임 유튜버 중 처음으로 구독자 200만 명을 달성한 도티. 200만이 집계되는 순간 그가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도티 인스타그램



인생은 영화의 해피엔딩처럼 어느 순간에 도달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란 말이죠.

지난해 12월 개봉한 실사 결합 애니메이션 영화 ‘도티와 영원의 탑’ 속 도티의 모습. 도티의 캐릭터와, 실제 도티가 게임과 현실을 넘나들며 등장한다. 6만7000여 관객을 모았다. 샌드박스네트워크 제공



유튜버로, 또 MCN의 창업가이자 대표로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던 그는 돌연 ‘휴식’에 들어갑니다. 국내 게임 유튜버 중 최초로 200만 구독자를 달성한 2018년이었습니다. 한 달 뒤 활동을 재개했지만, 2019년 3월 ‘도티 TV’ 전면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초통령’, ‘250만 유튜버’ 등 화려한 수식어가 달리는 ‘도티’와, 인간 ‘나희선’의 간극이 그를 집어삼킨 터였습니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의 긴 터널을 지나온 그는 ‘숫자’에 매몰된 유튜버들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악플, 매일 콘텐츠를 올려야 한다는 압박감, 아이디어 고갈 등 힘든 순간도 많았나요.

창작의 고통은 이 업의 본질이기에 크게 힘들진 않았어요. 아이들 타깃 콘텐츠라 악플도 별로 없었고요. 가장 힘들었던 건 ‘숫자의 세상’에서 살아야 했다는 거예요. 숫자로 목표 설정을 하는 것은 너무나 쉬워서 현재의 행복을 자꾸 미래로 유예했어요. ‘50만 구독자까지 달성하고 그때 행복해지자’고 목표를 정해요. 막상 구독자가 50만 명이 돼도 내 상황은 크게 달라진 게 없어요. ‘50만은 좀 애매하니 100만까지 열심히 달려보자’고 생각해요. 골드버튼을 받는다고 전 행복해졌을까요? 아뇨. 우리 인생은 영화의 해피엔딩처럼 어느 순간에 도달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란 말이죠. 숫자의 목표에 도달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네. 오히려 더 힘들어지네’라는 상황이 절 가장 괴롭게 했어요.

―부담의 크기가 상당했나 봅니다.

3000개가 넘는 영상을 올리는 동안 마음은 점점 지쳐갔는데 그걸 몰랐어요. 매일 영상을 올리는 게 너무나 당연했기에 저의 에너지가 유한하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하고 계속 저를 갈아 넣었던 거죠. 그러다 보니 ‘인간 나희선’을 챙기지 못했고, 번아웃과 공황장애가 동시에 왔어요. 아직 유튜브 활동은 잠시 쉬고 있어요. 234만 구독자 채널을 방치하는 게 아깝지 않으냐는 주변의 목소리도 크지만, 여전히 과거처럼 즐겁게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유튜브를 일처럼 하느니 좀 쉬어가다가 정말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때 즐거운 마음으로 하자는 생각이에요. 그게 저를 오래 기다려 준 팬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요.

―비슷한 번아웃의 시기를 지나는 크리에이터도 많아요. 그분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멈춰야 할 땐 멈추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특히 사회 경험이 없는 상태로 어린 나이에 유튜브를 시작한 친구들은 지치고 힘들어서 멈추고 싶어도, 조회수가 반 토막 나고 채널이 망할 것 같다는 불안감 때문에 어떻게든 영상을 찍어서 올려요. 관성적으로 콘텐츠를 만들다 보면 과정의 즐거움이 사라지고, 그걸 시청자들이 귀신같이 알아요. 그럼 초심을 잃었다고 악플이 달려요. 악순환의 고리인 거죠. 크리에이터는 매일 조회수와 구독자라는 성적표를 받아보기 때문에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계속 달리다 보면 넘어질 수 있어요. 그 전에 멈춰야 해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잘 챙겨야 롱런할 수 있어요.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어떤 일의 결과는 성공이냐 실패냐가 아니라, 현재의 내 상태 그 자체예요.

유튜버 도티가 아닌 ‘인간 나희선’을 돌아보는 시간 동안 그는 자신의 마음이 끌리는 것에 주저 없이 뛰어들었습니다. 모교인 연세대 겸임교수로 강단에 섰고, 자작랩으로 엠넷 ‘쇼미 더 머니’에 지원했습니다. 월드비전 홍보대사로 아프리카의 난민촌을 방문해 봉사활동도 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유튜버 도티’와 ‘인간 나희선’의 밸런스를 맞춰 나가는 중입니다.
―다양한 도전을 하고 계시는데 제2의 삶을 모색하는 건가요?

여러 일을 할 때 오는 여러 형태의 보람이 있어요. 유튜브에선 창작의 기쁨, 모교에서 수업을 했을 땐 이 산업에 관심 있는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에서 느끼는 감동이 있었죠. 얼마 전엔 월드비전과 함께 아프리카 난민촌을 방문해 4박5일 간 봉사활동을 했는데요, 제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세계의 모습을 목격하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제가 엄청 선한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순전히 저를 위한 활동들이에요. 제가 뿌듯하고 보람을 느끼기 위한 일들을 충실하게 해나가는 것뿐이에요.

지난해 월드비전을 통해 우간다에서 4박5일 간 봉사활동을 한 도티. 도티 인스타그램


―남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삶을 꽤 길게 살다가 온전히 를 위한 활동’에 집중하면서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재작년에 ‘쇼미더머니’에 참가했어요. 1차에서 광탈했고 통편집됐죠. 주변 사람들은 ‘탈락했으니까 실패한 거네’라고 얘기해요. 제 생각은 달라요. 어떤 일의 결과는 성공이냐, 실패냐가 아녜요. 진정한 결과는 현재의 내 상태에요. 쇼미를 준비하면서 힙합에 관심을 갖게 됐고, 랩과 가사를 쓰면서 해방감을 느꼈어요. 그 과정 덕에 현재 내 상태가 과거보다 즐거워지고 풍요로워진다면 그걸로 된 게 아닐까요? 가치 있고 행복한 과정이 차곡차곡 쌓이다보면 결과와 상관없이 좋은 사람이 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도티님에게 행복은 뭔가요?

정신적으로 아주 고통스러울 때 ‘행복은 뭘까?’라는 고민을 매일같이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행복을 찾는 과정 자체도 스트레스인 거예요. 소소한 행복을 찾으라고 쉽게 말할 수도 없어요. 소소한 게 제일 어렵거든요. 요즘 내린 결론은 그냥 불행하지 않으면 된다는 거예요. 불편하거나 불행하거나 고통스럽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주변 사람들에게 요즘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마음이 편안한 하루 되세요’거든요. 엄청나게 즐겁고 행복하지 않아도 평온한 가운데 불행하지 않은 일상, 그걸 찾으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성기와 슬럼프를 지나온 그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지금은 ‘한창 달릴 때의 도티도 나였구나’를 받아들였어요. 그때의 나는 참 대단했다, 박수쳐 주고 싶어요.”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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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