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대통령직 등 공직 출마에서 유죄 선고에 따른 여러 제한 규정을 두고 있다.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실효되지 않는 자’ 등의 규정이 그것이다. 미국은 ‘출생에 의해 미국 시민이 아닌 자, 연령이 35세에 미달한 자, 14년간 미국 내의 주민이 아닌 자’에 대해서만 연방 대통령 출마 자격을 제한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출생에 의한 미국인인지 공화당 쪽에서 문제 삼은 바 있다. 그러나 유죄 선고를 받은 적이 있는지는 묻지 않는다.
▷미국은 공권력의 정당성은 선거에서 나오고 선거가 우위라는 사고가 강하다. 지사와 의원은 물론이고 판사까지도 선거로 뽑는 주(州)가 적지 않다. 연방에서는 법관을 선거로 뽑지는 않지만 선거로 뽑힌 대통령이 선거로 뽑힌 상원의 동의를 얻어 임명하기 때문에 선거 우위의 원칙이 관철되고 있다. 남북전쟁의 여파로 연방 상·하원의원과 연방 대통령 선거인에는 반란죄를 저지른 사람이 도전할 수 없다. 연방 대통령에게는 그런 제한도 없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주 뉴욕주 법원 1심에서 ‘성추문 입막음 돈’과 관련한 혐의로 배심원단에 의해 유죄 평결이 내려졌다. 형량은 판사가 결정한다. 판사는 공화당 전국 전당대회 직전인 7월 11일을 선고 기일로 잡았다. 최대 징역 4년형을 선고할 수 있다. 물론 그날 선고는 1심 선고일 뿐이다. 그러나 유죄 판결이 확정돼도 대선 출마 자격에는 문제가 없다.
▷미국 헌법의 기초자들은 직접선거로 뽑는 연방 상·하원의원과 달리 연방 대통령은 선거인단을 통해 간접적으로 뽑기 때문에 부적절한 인물을 걸러낼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정당 정치가 강화되면서 특정 후보 지지 선서를 하지 않으면 선거인으로 뽑히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안이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특정 후보 지지 선서를 강제하는 규정은 없다. 당 내부에 분열이 생기면 ‘선서하지 않은(unpledged)’ 선거인이 나오거나 특정 후보 지지 선서를 했지만 정치적 불이익을 감수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신의 없는(faithless)’ 선거인이 나올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