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한국프로골프(KPGA) 프로 테스트를 통과한 윤석민이 호쾌한 드라이버샷을 날리고 있다. KPGA 제공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 에이스로 활약했던 윤석민(38)은 어깨 부상으로 33세에 은퇴한 뒤 좌절감과 상실감에 빠졌다. 밤에 잠들기 위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매일 소주 한두 병을 마셔야 겨우 잠을 잘 수 있었다. 다음 날 늦게 일어나서는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 게임을 했다.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았고 사람들도 거의 만나지 않았다.
방황하던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선수 시절 가끔 즐기던 골프였다. 한 지인이 그를 필드로 불러냈다. 시니어 프로 골퍼로 활동하던 동반자들은 ‘일파만파’(첫 홀을 모두 파로 적어주는 것), 멀리건과 컨시드도 없이 골프 규칙에 따라 철저하게 스코어를 적었다. 스트레스를 풀러 나왔던 그는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 곳에선 뜨거운 감정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본 ‘승부욕’이었다.
그날 이후 그는 하루하루를 골프로 불태우기 시작했다. 뭔가 집중할 게 생기자 잡념도 사라졌다. 그렇게 1년을 지내자 실력은 일취월장했고, 주변에선 그에게 프로 도전을 권했다. 프로의 벽은 높았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그는 6차례나 프로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연속된 낙방이었다. 인생의 새 목표를 찾은 윤석민은 “골프 대회장에 가면 마운드에 섰을 때처럼 설레는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매번 탈락했지만 너무 신나고 재미있었다”고 했다.
골프로 삶의 활력을 찾은 그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프로 골퍼 자격으로 각종 이벤트 대회나 프로암 등에 나서고 있다. 본업인 야구 해설위원으로도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도 얼굴을 내밀고, 유튜브 활동도 한다. 몸이 한창 망가졌을 때 시속 100km의 공도 제대로 던지지 못했던 그는 최근 한 사회인 야구 대회 마운드에 올라 최고 시속 136km를 찍었다.
오랫동안 건강하게 활동하기 위해 그는 자기 관리에도 열심이다. 가능한 한 소식하려고 하고 틈나는 대로 걷는다. 바쁜 스케줄 탓에 운동할 시간이 많지 않지만 끊임없이 몸을 움직인다. 야구인이자 골프인인 그는 “두 종목 모두 끝이 없는 게 매력”이라고 했다. 그는 “야구를 잘하던 선수도 한순간 삐끗하면 2군에 내려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 골프도 ‘오늘은 되는구나’ 싶다가도 내일 안 되기 일쑤다. 야구와 골프도 인생처럼 무너지지 않게 항상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주말 골퍼들에게도 꾸준함을 강조했다. 윤석민은 “한두 번의 레슨이나 연습으로는 실력이 늘지 않는다. 한 달이든 두 달이든 시간을 들여 꾸준히 몸에 익혀야 한다. 쉽게 되는 건 세상에 없다”고 말했다.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