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대통령’ 허재 가족 한자리에 프로농구 챔프전 형제끼리 맞붙어 형은 우승-MVP, 동생은 최다득점… 아버지-장남, 사상 첫 ‘父子 MVP’ 남편 “형제 키 작아 살짝 아쉽다”… 아내 “농구, 신장 아닌 심장으로”
허재, 부인 이미수 씨, 큰아들 허웅(KCC), 작은아들 허훈(KT·왼쪽부터)이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를 찾아 가족 사진을 남겼다. 허웅은 2023∼2024시즌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로 뽑혔고, 허훈은 챔프전 국내 선수 평균 득점(26.6점) 역대 1위 기록을 갈아치웠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키가 살짝 아쉽다. 두 녀석 모두 5cm만 더 컸으면 좋았을 거다. 아예 못했으면 이런 생각도 안 할 텐데 정말 잘하고 있으니까 이런 아쉬움도 든다.”
‘농구 대통령’ 허재(59)는 큰아들 허웅(31·KCC·185cm), 작은아들 허훈(29·KT·180cm)과 함께 최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를 찾은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농구 영부인’ 이미수 씨(58)가 “농구는 신장이 아니라 심장으로 하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허웅의 소속팀 KCC는 2023∼2024시즌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에서 허훈이 버틴 KT를 4승 1패로 꺾고 정상을 차지했다. 허웅은 아버지에 이어 챔프전 최우수선수(MVP) 타이틀까지 따냈다. 프로농구 챔프전 부자(父子) MVP는 이들이 처음이다.
허재는 “이번 챔프전은 아들 두 녀석 모두 잘하니 좋았다. 그런데 우승은 큰아들이 하고, MVP는 작은아들이 탔으면 더 멋있지 않았을까”라며 웃었다. 허재는 기아 소속이던 1997∼1998시즌 챔프전에서 KCC 전신인 현대에 3승 4패로 패하고도 MVP로 뽑혔다. 준우승 팀 소속으로 프로농구 챔프전 MVP를 받은 선수는 허재가 유일하다.
허웅은 “아버지가 챔프전 MVP를 (당시 기아 연고지였던) 부산에서 받았는데 그다음 부산 팀에서 나온 MVP가 나라고 한다. 훈이도 (KT가 수원으로 연고지를 옮기기 전까지) 부산에서 뛰었다. 신기하다”고 했다.
부산은 아내이자 어머니인 이 씨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 씨는 원래 두 아들을 부산에 있는 명문고에 진학시키는 게 꿈이었다. 이 씨는 “친정이 의사 집안이라 운동선수와 결혼한다니까 난리가 났다. 집안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해서 ‘내가 더 책임지고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강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시절 전교회장을 맡을 정도로 공부를 잘하던 큰아들이 ‘농구를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이 씨의 꿈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이어 또래보다 키가 작았던 작은아들까지 농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 씨는 두 아들이 다니던 서울 용산중·고교 앞으로 이사한 뒤 매일 세 끼를 직접 해먹이며 뒷바라지를 시작했다.
허훈은 “(어머니가 해준 밥은) 영양이 너무 과해 오히려 못 컸다”고 너스레를 떤 뒤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대는 이야기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도 허재 아들보다는 중소기업 사장 아들 정도가 딱 좋은 것 같다. 유명하지는 않고 돈은 많으니까”라며 웃었다.
허훈은 아직 챔프전 MVP로 뽑힌 적은 없지만 형은 받지 못한 정규리그 MVP를 2019∼2020시즌 받았다. 허훈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 (챔프전 MVP는) 형이 먼저 받는 게 맞다. 다만 KCC 멤버가 워낙 좋아 우승했다는 사실은 형이 좀 인정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에 허웅은 “이게 바로 패한 팀 선수들 특징이다. 핑계가 너무 많다”고 응수했다.
두 아들이 잘하면 잘할수록 이 씨는 우산장수와 소금장수 두 아들을 둔 어머니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이 씨는 “훈이가 정규리그 MVP를 탔을 때는 웅이가 발목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이어서 힘들었다. 이번에는 웅이가 챔프전 MVP를 탔는데 훈이가 감기몸살로 일주일을 드러누워 감흥이 덜했다”면서 “그래도 올해는 아들 걱정은 별로 없다. ‘병원 좀 가보라’고 할 때 그렇게 안 가더니 결국 쓰러진 남편이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심혈관 질환으로 입에 달고 살던 술을 끊은 허재는 “이번에 챔프전에 가보니 두 아들 모두 팬이 참 많더라. 두 녀석 모두 사람들이 좋아하는 성격이라 다행이다. 나는 적이 참 많았는데…”라고 ‘셀프 디스’ 한 뒤 아내와 두 아들을 보며 껄껄 웃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