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내게 없는, 그 여름 옥상의 풍경들
스물셋까지 내내 살았던 우리 집은 동서로 긴 2층짜리 다세대 주택이었다. 옥상엔 한가운데 불법 증축한 옥탑방과 LPG 가스통 두 개가, 양 쪽으론 엉성한 빨랫줄과 텃밭, 전 집주인이 두고 간 장독이 있었다. 시멘트 바닥이 뜨끈했는지 동네 고양이들은 거길 올라와서 배를 내놓고 드러누워 해바라기를 하곤 했다.
내가 빨랫줄에 손이 넉넉히 닿을 만큼 크자 엄마는 심부름을 자주 시켰다. 여름 태양은 쨍하도록 하얬다. 대낮의 뙤약볕이 사나움을 거두고 해가 점차 뉘엿해질 무렵이면 엄마는 “정수야, 옥상 가서 빨래 좀 걷어와라.”
빨래 걷는 심부름이 그렇게도 좋았다. 너는 건 아직 못해도, 걷는 건 자신이 있었다. 엄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큼직한 아빠 쓰레빠를 꿰어신고 옥상 계단을 성큼성큼 올랐다. 한낮을 견딘 수건들은 종이처럼 딱딱하고 판판하게 각이 졌다. 한쪽 빨래 집게를 먼저 풀어 왼팔에 수건을 조심히 걸치고, 다른 집게를 풀자마자 잽싸게 나머지를 받쳐 안았다.
6월이다. 아파트 1층엔 이제야 햇살이 거실까지 한 뼘씩 걸어들어온다. 단열 유리창을 거친 태양은 미지근하고 얌전하다. 주말 오전은 건조기 옆에 접어둔 빨래 건조대를 베란다 옆에 펼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직 장마는 멀었으니 건조기도 조금은 더 쉬어도 될 테다.
푹 젖은 빨래 더미를 전기로 말려내는 건조기는 어째서 그토록 우악스럽단 생각이 드는 걸까. 뜨겁기만 한 빨래 무더기에 처음 얼굴을 묻어보며 생각했다. 올올이 열기로 부푼 수건은 보드랍게 늘어진다. 둔탁한 기계가 다급하게 빨래를 말리는 동안 방에는 햇빛 냄새 대신 묘하고 매캐한 먼지 냄새가 감돌았다.
아무래도 기계가 뿜어내는 열풍보단 시간과 바람과 해에 기대는 편이 내게는 더 편안하다. ‘이젠 훌쩍 커서 이것보다 넓다란 이불도 잘만 널 수 있지.’ 매끄러운 플라스틱 봉에 수건을 하나씩 펼쳐 거는 동안 문득 발가락 끝에 미지근한 햇살 가장자리가 닿는다.
열매가 알알이 여문 앞집의 살구나무, 가만히 눈길 두고 지켜보면 한 몸처럼 천천히 흔들리던 뒷산의 나무들, 어디선가 “하- 하- 하- ”하고 들려오던 이름 모를 새소리, 매일 같은 시간에 계단에 쪼그려 앉아 동네 사람을 구경하던 옆집 혜성이네 할머니, 텃밭에서 잡초처럼 자라나던 딸기와 상추, 꽃 피운 대파 따위의 채소들.
그리고 엄마가 “너 여태껏 뭐하니?”하며 올라올 때까지 그것들을 가만히, 아무 생각 없이 오래오래도 바라보았던 햇볕 속의 나.
[소소칼럼]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소소한 취향을 이야기하는 가벼운 글입니다. 소박하고 다정한 감정이 우리에게서 소실되지 않도록, 마음이 끌리는 작은 일을 기억하면서 기자들이 돌아가며 씁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