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선수들 아내, 여자친구에게 명품 가방 선물하면서 ‘잘 봐 달라’고 읍소한 게 몇 번인지 몰라요. 그렇게 아부 안 했으면 선수들에게 마음 놓고 큰소리 못 쳤죠.”
프로 팀 감독 시절 ‘카리스마’라는 표현이 늘 따라다녔던 A 씨의 말이다. A 씨는 특히 선수단 숙소 생활 관리 능력 하나만큼은 따라올 자가 없다는 평을 들었다. 선수들 외출·외박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인권 침해 아니냐’는 비판이 따를 정도였다.
그런데 당시 선수들 대부분이 여전히 ‘그를 존경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A 씨는 자신이 지도자 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친 이유로 ‘아부’를 꼽았다. “선수가 숙소에서 도망쳐서 ‘소풍’을 갔을 때 여자친구에게 ‘여기 있으니 데려가라’고 하는 전화도 많이 받았습니다.”
맞다. ‘아부는 나쁜 것’이라고 지적하는 말이 세상에 차고 넘친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 보면 ‘아부하면 안 된다’는 말보다 ‘아부는 걸러 들어야 한다’는 조언이 훨씬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들라이 스티븐슨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1900∼1965)는 “아부는 항상 옳다. 당신이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만 않는다면…”이라고 말했다.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아부를 그저 칭찬인 줄 아는 사람도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1890∼1969)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시킨 ‘4성 장군’이기도 했다. 그는 “대통령 임기가 끝나고 나서야 내가 골프를 얼마나 못 치는지 알게 됐다”고 했다. 그 전까지 그와 공을 치는 이들이 어떤 마음가짐이었는지는 다들 짐작하는 대로일 거다.
이를 한 번 더 뒤집으면 인간은 ‘직언’에 정말 약하다는 뜻도 된다. 얼마 전 연승 중인 프로야구 팀이 수석코치를 퓨처스리그(2군)로 내려보낸 일이 있었다. 이 수석코치는 감독이 “내게 쓴소리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며 직접 영입한 인물이었다. 이 코치도 참다못해 터뜨렸겠지만 이런 인물에게 듣는 쓴소리야말로 거슬리고 또 거슬리는 법이다.
가수 조영남 씨는 자작곡 ‘겸손은 힘들어’를 통해 ‘겸손 하나 모자란 것 빼면 내가 당대 제일’이라고 노래했다. 겸손이 이렇게 힘든 일이기에 세상에는 아부가 필요하다. 남을 높이는 게 나를 낮추는 것보다는 그래도 쉬운 일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남을 높이면 보통 나도 높아진다는 게 아부가 지닌 힘이다.
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