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임 논설위원
전국 의대와 의학전문대학원 40곳이 내년도 모집 요강을 발표하면서 의대 증원 절차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그간 의료계가 ‘파업 카드’를 살짝 꺼내 들기만 해도 무산됐던 의대 증원이 27년 만에 이뤄진 것이다. 정부는 정말 의대 증원에 성공한 것일까. “조속히 논의” “우선적 추진” 같은 타성에 젖은 관료적 언어만 들리는 걸 보면, “의료 파국은 정해진 미래”라는 의료계 예언이 실현될까 두려워진다.
2000년 의약 분업도 ‘반쪽 개혁’ 끝나
의대 증원처럼 의료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단행한 의료 개혁이라고 한다면 의약 분업이 있다. 2000년 7월 의약 분업 시행을 앞두고 의료계는 파업으로 격렬하게 저항했다. 의료 대란 와중에 의약 분업이 전격 도입됐고 환자들은 병원에 가면 의사가 없고, 약국에 가면 약이 없는 상황을 견뎌야 했다. 제도 안착 과정에서 혼란이 커지자 정부는 의약계를 번갈아 달래야 했고, 결국 원안과는 다른 ‘반쪽 개혁’이 됐다.
24년 전 의약분업은 약품 오남용 예방, 약제비 절감, 의약품 유통 구조 정상화 등을 목표로 했다. 의약분업이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의료 행태를 정착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당초 목표 달성에는 미흡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약 복용량이 많고, 의약품 유통 구조도 후진적이다. 병의원엔 진찰료를 올려주고, 약국엔 조제료를 신설해주다 보니 이듬해 건강보험 재정 지출이 폭증했다.
그런데도 필수-지역 의료로 의사를 유인할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필수 의료에 대한 보상을 강화한다지만 무슨 예산으로, 어떻게 원가를 보상할 것인지 구체적인 밑그림이 없다. 지역 인재가 지역에 정주할 대책도 없다. 최근 경상국립대가 졸업 후 10년간 지역에서 일하도록 하는 지역 의사 전형을 신설하려다 보류했다. 현행법상 관련 규정이 없어서였다.
전투에서 이기고 의료 개혁 전쟁서 질라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중증-필수 의료에 대한 보상 강화, 의료전달체계의 정상화, 전공의 수련 국가 책임제,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모두 우리 의료 시스템의 오래된 숙제고, 이미 해법이 나와 있는 사안이다. 정부는 2, 3년마다 의료계와 협의체를 만들어 이를 논의했지만 과감한 재정 투입이 필요하거나, 국민을 불편하게 만들어 표심을 등질 정책이라 여태껏 미뤄 왔을 뿐이다. 의사들은 의료개혁특위를 두고도 “병원 이용을 제한하면 다음 선거에 질지도 모르는데 의료 개혁이 되겠냐”며 시큰둥하다.
정부는 의료 공백 사태 동안 경증 환자가 응급실을 찾지 않고, 대학병원의 전공의 의존도가 줄어들자 ‘의료 정상화’라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의료 시스템이 비정상이었고, 이를 방치해 왔음을 자인하는 셈 아닌가. 이번만큼은 요란스럽게 대책을 발표하고는 정권이 바뀌면, 담당 공무원이 바뀌면 없던 일이 되는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 의사를 늘려 놓고 의료 개혁을 실기한다면 우리 의료 시스템은 정말 망가진다. 의대 증원 그 이후가 진짜 의료 개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