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기재부 대통령 정례보고후 靑 “사회적 논란 야기 소지” 문건 보내 홍남기 “두 자릿수로 만들라” 지시 실무진 “보도자료 자괴감” 문자 나눠
문재인 정부가 2020년 장기재정전망을 발표하면서 2060년 예상 국가채무비율을 72%포인트 축소하는 등 왜곡했다고 감사원이 4일 밝혔다. 정부가 나랏빚 전망치를 낮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잘못된 계산법을 동원해 206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153%에서 81%로 낮췄다는 것.
감사원에 따르면 당시 경제 수장이었던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재부 재정혁신국장에게 2060년 국가채무비율을 “두 자릿수로 만들라”며 전망치를 낮추기 위한 계산 방식까지 제시했다. ‘나랏빚 경고등’ 역할을 하는 이 비율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일부 청와대 관계자들은 집값, 고용, 소득 등 국가 통계 조작 혐의로 이미 재판을 받고 있다. 감사원은 이미 퇴직한 홍 전 부총리를 징계할 수 없는 만큼 향후 공직 임용에 참고할 인사자료를 남겨두라고 기재부에 통보했다.
●靑 “사회적 논란만 야기할 소지”
하지만 청와대는 정례보고 당일 기재부에 안건별 청와대 의견을 정리한 문건을 보냈다. 문건엔 “의미는 크지 않으면서 사회적 논란만 야기할 소지”라며 “인구 구조, 사회경제 패러다임이 계속 변하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논란이 커지지 않게 잘 관리하고 신경 써 주기 바람”이라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이후 기재부 실무진은 홍 전 부총리에게 2060년 국가채무비율을 ‘최소 129.6%, 최대 153%’로 전망한 초안을 보고했다. 그러자 홍 전 부총리는 “국민이 불안해한다”며 “두 자릿수로 만들라”고 지시했다고 당시 보고 자리에 있던 공무원들은 감사원에서 진술했다.
홍 전 부총리가 “정부 총지출이 매년 경제성장률과 같은 속도로 늘어난다고 가정하라”는 지시도 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정부 총지출은 국민연금 등 법에 따라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의무지출’과 정부가 정책 집행에 따라 규모를 조정하는 ‘재량지출’로 나뉜다. 홍 전 부총리는 당시 의무지출에 재량지출을 더한 총지출이 경제성장률만큼 늘어난다는 전제 아래 채무비율을 계산하라고 했다는 것. 홍 전 부총리의 가설이 들어맞으려면 후임 정부들은 의무지출이 늘어나는 만큼 정책 집행에 필요한 재량지출을 줄여야 했다. 하지만 당시 이미 고령화 여파로 국민연금 지급액이 늘어나는 등 정부 의무지출이 가파르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또 기재부 재정혁신심의관이 “재량지출이 감소하는 구간이 생기는데 합리적이지 않다”고 반대했지만 홍 전 부총리가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할 수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감사원은 설명했다.
●실무진, “내 이름 적힌 보도자료 내기 싫어”
이번 감사에선 기재부가 2014∼2022년 각 부처로부터 국가정책적 추진 사업이란 이유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요청을 받은 64건 중 63건을 수용하는 등 면제 조치를 남발한 사실도 드러났다. 예타 면제 금액은 2016년 2조7000억 원에서 2017년 17조6000억 원으로 대폭 늘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국가채무비율
국내총생산(GDP) 대비 나랏빚 비율. 국가채무비율은 2011년 30%를 넘긴 뒤 9년 만인 2020년 40%대를 기록했고 지난해 50.4%로 최대치를 경신했다. 경제성장이 둔화되는 반면 채무가 불어나 비율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