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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가 원주민 문화를 띄우는 까닭은? 21세기 새로운 관광전략[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입력 | 2024-06-05 11:13:00


호주는 코로나19 이후 전세계 관광시장에서 무섭게 떠오르고 있는 다크호스다.

광활한 자연환경 속에서 잘 정비된 관광인프라 덕분에 웰니스와 지속가능한 성장, 미식과 자연 속 탐험과 새로운 경험을 중요시하는 밀레니엄 세대의 여행 트렌드에 잘 맞아 떨어지는 여행지이기 때문이다.

바다면 바다, 산이면 산, 열대우림과 초원, 사막, 펭귄과 새, 신기한 유대류 동물, 문화 예술과 스포츠까지 다양한 관광인프라를 갖춘 호주가 새롭게 내세우는 또하나의 전략이 있다. 그것은 바로 ‘호주 원주민 문화(Indigenous Culture)’다.

지난 20~23일 호주 빅토리아주 멜번에서 열렸던 호주 최대 관광교역전 ATE24에는 호주와 전세계 관광업계 종사자 2200여 명이 참가했다. 개막 첫날 야외에서 호주의 원주민 전통악기인 ‘디제리두(Didgeridoo)’ 연주자의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디제리두는 흰개미가 속을 갉아 먹어서 빈 유칼립투스 나무로 만들어진 관악기다. 리드가 없는 악기인데, 대금처럼 특수한 호흡 기술과 입술의 진동을 통해 소리를 내는 악기다. 스위스 호른처럼 길쭉하게 생긴 악기에서는 저음으로 깔린 독특한 울림소리가 난다.

마치 몽골초원에서 한 사람이 두개의 목소리를 내면서 부르는 ‘흐미(khoomi)’ 같은 느낌의 소리다. 호주 원주민을 만날 때면 모두 각각 자신이 직접 만들고, 화려한 문양을 새겨넣은 디저리두를 갖고 있었다. 동물원에서도, 배 안에서도, 섬에서도, 산 속의 바위와 동굴에서도 원주민들은 즉흥적으로 디제리두 연주를 들려주었다.

호주 케언즈에서 그레이트배리어리프로 향하는 배 안에서 원주민 출신 직원이 디제리두를 연주하고 있다

퀸즐랜드주 케언즈에서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로 스쿠버다이빙을 하러가는 배 안에서도 원주민 부족 출신 직원이 디저리두를 연주해주었다.

자라말리 암벽화 투어 도중 디제리두를 연주하는 원주민 가이드 조니 씨. 

또한 퀸즐랜드주 북부 로라에 있는 케이프 요크 반도 산악지대에 있는 ‘원주민 암벽화 갤러리 (Rock Art Gallery)’ 앞에서도 원주민 가이드 조니(Johnny)가 디저리두를 연주해주었다. 그는 이 악기로 캥거루의 깡총깡총 뛰는 모습을 음악으로 형상화해서 연주를 해주기도 했다.

호주 골드코스트 커럼빈 야생동물공원의 원주민 애버리진 컬쳐쇼.

골드코스트에 있는 커럼빈 야생동물공원에서도 원주민의 춤과 노래를 들려주는 ‘애버리지널 컬쳐 쇼(Aboriginal Culture Show)’ 공연을 했다. 여기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디저리두다.



● 호주 원주민 애버리진

호주 대륙에 살고 있는 원주민은 애버리진이라고 부른다. 현재도 전체 인구의 약 3.3%인 약 81만 명의 애버리진이 살고 있다. 호주 원주민은 약 4~7만 년 전에 호주 대륙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사람들이다. 250여 년전 영국인들이 호주에 도착했을 때 원주민들은 약 250개의 언어를 쓰는 다양한 부족들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서양인들이 가져온 세균과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고, 대규모 학살까지 당하면서 1900년까지 원주민 인구는 90%까지 감소했다고 한다.

호주의 원주민들은 1967년이 돼서야 시민권을 부여받았으며, 1984년이 돼서야 투표권을 인정받았다. 이후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원주민 출신 육상스타 캐시 프리먼이 여자 4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호주 정부는 2008년 캐빈 러드 총리가 원주민에 대한 차별과 탄압의 과거사에 대해 공식사과한 이후 원주민 피해자 배상과 함께 원주민 문화와 전통을 호주의 역사에 포함시키는 작업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오늘날 사용되는 호주 원주민 언어는 20개 미만이지만, 처음 영국인이 호주에 도착했을 당시에는 250개 이상의 언어가 존재했다고 한다. 호주에서 사용하는 영어에서는 이런 원주민 언어에서 기원한 단어가 400개 이상 으로 알려져 있고, 주로 사용하는 단어들은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호주의 동물 이름이나 다양한 지명이 있다.

캥거루, 왈라비, 코알라, 웜뱃, 포썸(호주 주머니쥐), 바라문디(강에 사는 큰 물고기), 딩고(호주 야생 들개) 등 동물이름 뿐 아니라 부메랑(던지면 돌아오는 V자 형태로 생긴 사냥용 도구), 빌라봉(강이 코스를 바꾼 후 남겨져 고립된 연못) 등의 용어도 많다. 또한 호주의 수도 이름인 캔버라(Canberra​)도 ‘만남의 장소’라는 뜻의 원주민 언어라고 한다.

호주 정부는 영어식으로 불렀던 지명도 다시 원주민 언어로 바꾸거나 병기하는 작업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노던 테리토리(NT) 주 사막한 가운데 있는 사암바위는 지상에 노출된 단일암괴 중 세계 최대 크기여서 ‘세계의 배꼽’으로 불린다. 원래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총리였던 헨리 에어즈경의 이름을 따 ‘에어즈 락(Ayers Rock)’으로 불렸는데, 최근 ‘울루루(Uluru)’로 바꿨다. 원주민 언어로 ‘그늘이 지는 장소’라는 뜻이다.

호주 북동부 퀸즐랜드주 동부연안을 따라 122km로 길게 뻗어 있는 세계 최대의 모래섬인 ‘프레이저 아일랜드(Fraser Island)’는 ‘가리(K‘gari) 섬’으로 이름이 변경됐다. 섬 전체가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등재돼 있을 정도로 셰계 최고의 휴양지로 꼽히는 이 섬은 부근에서 배가 좌초돼 1836년 섬에서 죽은 제임스 프레이저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가리(K’gari)’는 호주 부출라어 원주민 언어로, 이 섬을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전설 속 여성의 이름이다. 서호주는 ‘킹 레오폴드 산맥(King Leopold Rages)’의 공식명칭을 ‘우나민 밀리원디 산맥(Wunaamin Miliwundi Ranges)’로 바꿨다.

또한 호주 정부는 시드니(와라네/warrane), 멜버른(나암/Narrm), 퍼스(부를루/Boorloo),애들레이드(타른타냐/Tarntanya), 케언즈(기무이/Gimuy), 브리즈번(미안진/Mian-jin, 뾰족한 모양을 한 곳) 등 대도시의 이름을 원주민식 언어와 병행표기 한다.

호주 골드코스트 젤루갈 원주민 문화센터의 가이드가 바디페인팅하는 흙의 재료를 설명하고 있다

호주의 역사는 흔히 1770년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이 호주 동남부 지역을 점령해 대영제국 영토로 선포한 이후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호주 정부는 이 전에 살고 있던 원주민의 문화와 전통, 역사를 적극적으로 재수용함으로써 문화, 관광산업의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호주의 역사가 250년 정도가 아니라 6만 년 이상 된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를 가진 나라라는 것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바디페인팅용 흙. 곱게 빻은 후 물에 개어서 피부에 바르면 흰색, 붉은색 빛이 난다



지난달 20~23일 호주 빅토리아주 멜번에서 열린 호주 최대 관광교역전 ’ATE 2024‘에서도 호주 각 지역마다 원주민 문화체험 여행 상품을 들고 나왔다. 사전투어로 참가했던 퀸즐랜드주 팸투어도 타이틀이 ‘퀸즐랜드 원주민 문화 투어’(Queensland Indigenous Culture Tours)였다. 퀸즐랜드의 대표적인 도시인 브리즈번 골드코스트, 케언즈의 그레이트배리어리프, 북 퀸즐랜드 산악지대 암벽화 투어에서도 모두 원주민 문화가 주제였다.

호주 원주민이 나무에서 치료약과 먹을 것을 얻는 부시 터커를 설명하고 있다.

원주민들이 어떻게 나무에서 약성분을 얻고, 먹을 것을 얻고, 나무 껍질로 그릇과 가방을 만들고, 어떤 흙을 캐서 피부에 발라 바디페인팅 치장을 하고, 어떤 노래와 춤을 추고, 어떤 악기를 불고, 원주민이 남긴 예술 작품 속에 자연을 해석하는 영험한 지혜가 들어 있는지 원주민 출신 가이드가 직접 설명해주며 함께 하는 투어였다.

호주 골드코스트 민제르바섬의 호주 원주민 아티스트

조개껍질을 활용한 원주민 공예 작품.

호주의 대도시를 여러번 투어해본 관광객들의 경우 호주에도 이렇게 오래된 자연 속 지혜를 가진 원주민 문화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등 서양에서 온 관광객들은 더욱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호주가 완전 서양의 국가라고 생각했던 이미지에서 벗어나 태평양 연안의 섬국가들이 갖고 있는 전통문화를 나름 잘 보존하고 있는 나라라는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퀸즐랜드주 관광청 셜리 윈켈 씨는 “지명에 대한 이중 표기는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으로 장기적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라며 “프레이저섬이 ‘크가리’로, 브리즈번이 ‘미안진’으로, 모튼섬이 ‘멀검핀’으로 불리게 된 것은 진정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글, 사진 멜버른=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