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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해서 꿈조차 작아지는 아이들…눈물지었죠” ‘음악 멘토’ 강기쁨 씨[따만사]

입력 | 2024-06-06 12:00:00

버클리 음대 졸업한 뒤 현재 대안학교 음악 교사로




피아노 선율과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는 서울 성동구의 한 대안학교, 밝은 표정으로 건반 앞에 앉아있는 사람은 이 대안학교 아이들의 음악 교사 강기쁨 씨(31)다.

버클리 음대 실용음악과를 졸업한 뒤 현재 대안학교 음악 교사로 일하고 있는 강 씨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음악에 대한 꿈을 꾸고 있는 취약계층 아이들의 ‘음악 멘토’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자신이 지나온 길을 뒤따라 걷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고, 지인을 통해 ‘월드비전’의 ‘꿈꾸는 아이들’ 프로그램을 알게 된 후 망설임 없이 이 아이들의 ‘멘토’가 되기로 결심했다.

“음악 관련 꿈을 꾸는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해주고, 잘 모르고 있는 부분들이 있으면 설명도 해주고, 음악에도 연주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들이 있다는 것도 알려주고 있어요.”



아이들과 연결해준 ‘꿈꾸는 아이들’ 프로그램

강 씨와 아이들을 연결해준 것은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비전’에서 실시하는 ‘꿈꾸는 아이들’ 프로그램이다. ‘월드비전’은 현재 2만 5000여명의 취약계층 아동들을 대상으로 ‘꿈꾸는 아이들’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3년부터 취약계층 아동·청소년들이 위기에서 보호받고 꿈을 찾아 도전하며, 나누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운영되고 있는 ‘꿈꾸는아이들’은 취약계층 아이들의 꿈의 유무에 따라 성장 단계별 맞춤형 통합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꿈이 없거나 모르는 아이들에겐 꿈을 탐색하고 경험하는 ‘꿈디자이너’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확실하고 구체적인 꿈을 가진 아이들에겐 꿈을 구체화하고 실천하는 ‘꿈날개클럽’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고 있다.

아이들은 지원을 받기 위해 자신의 꿈에 대한 계획과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설명하고, 엄격한 심사를 통해 통과된 아이들에게는 경제적 도움과 실질적인 맞춤 지원이 제공된다. 아이가 프로그램을 잘 실행하고 있는지 검증하는 과정도 거치고 있다.

월드비전 윤지영 차장은 ‘꿈꾸는 아이들’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당장 필요한 먹을 것 등은 지원이 되고 있지만 정작 아이들이 내일을 꿈꿀 수 있는 기반이 너무 약한 거예요. 현실의 벽 때문에 아예 꿈조차 꾸지 못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는 조사를 보고, 생계를 유지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지만 미래에 대해서 꿈을 꿀 수 있는 것도 아이들한테 너무나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해서 차근차근 시작을 하게 됐어요.”




음대생이 되어 다시 만난 첫 멘티
강 씨가 처음 멘토링을 했던 학생은 윤아(가명) 양이다. 그는 윤아 양과의 첫 만남에 대해 이렇게 회상한다.

“(윤아가) 되게 어렸어요. 저도 멘토링이 처음이었고. 그 아이의 상황이나 이야기들을 듣고 마음을 나누면서 짠한 마음도 많았고, 진짜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고, 진로를 잘 선택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으니까 기억이 되게 남았죠.”

짧은 시간의 멘토링이었지만 몇 년 뒤 강 씨는 윤아를 다시 만나게 됐다. 다시 만난 윤아는 강 씨의 멘토링을 받고 꿈을 이어나가 서울의 한 대학교 작곡과에 진학한 상태였다.

“그 이후로 다른 여러 가지 멘토링들을 하게 됐는데, 대학생 친구들 멘토 역할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갔더니 낯익은 얼굴과 이름이 있는 거예요. 윤아가 그때 저와 얘기하고 음악 쪽으로 진로를 정해서 작곡과에 진학을 해서 만나게 된 거죠. 제가 해준 말들을 다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그때 진짜 놀랐거든요. ‘내 말이 뭐라고 그 아이가 그걸 기억하고 있었을까?’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 ‘너무 반갑다 이렇게 잘 커줘서 너무 고맙다’고 했죠. 윤아가 꿈을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 정말 감사했어요. 윤아는 지금 일본 유학을 갔어요.”



“꿈조차 제한적으로 꾸는 우리 아이들”
아이들을 도우면서 강 씨가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은 어려운 상황 때문에 아이들 스스로가 꿈에 제한을 두는 모습을 볼 때였다.

“현실적인 상황들 때문에 꿈조차 너무 제한적으로 꾸는 경우가 너무 많은 거예요. 앞이 잘 보이지 않고 또 상황들이 버거울 수도 있고…‘나의 상황은 이러니까 여기까지만’, ‘전 여기까지 밖에 안 되지 않을까요?’ 하는 그게.”

그래서 그는 아이들에게 ‘꿈꾸는 건 정말 돈 드는 일도 아니고, 누구에게나 무한하게 꿀 수 있는 기회가 다 주어진다’는 말을 자주 해줬다.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다 보니 들어가는 비용들도 너무 많고 현실에 그렇게 부딪히다 보면 작은 꿈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어요. 그럴 땐 제가 겪은 이야기들을 많이 해줬어요. 사실 저도 가정이 넉넉하고 형편이 아주 좋은 건 아니었거든요. 막연한 꿈이었지만 지금은 현실로 이뤄진 게 너무 많아요. 어릴 때 항상 누가 어느 학교 갈 거냐고 물으면 버클리 간다고 했었고. 사실 제게 일어난 일들은 정말 기적이었죠.”




“제가 받았던 것 지금은 아이들에게 돌려주는 것”
강 씨가 아이들에게 멘토링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자신의 조언을 아이들이 잘 기억해줄 때다. 그는 오히려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을 연달아 했다.

“저는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모든 걸 쏟다보니 멘토링을 다 하고 나면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날 때도 있어요. 그런데 제가 해준 그 말들이 뭐라고 그걸 다 기억하고 있다는 말들을 들으면 진짜 감사했죠. 그게 아이들한테 용기가 됐고, 도움이 됐다는 그런 얘기들을 들었을 때 정말 감사해요.”

그는 어쩌면 자신이 받은 복을 남에게 돌려주는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에게도 자기 일처럼 나서 도움을 준 학교 은사, 멘토들이 참 많았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항상 그 다짐들을 했거든요. ‘나도 내가 누군가한테 내가 도움 줄 수 있을 때 저 사람들처럼 내가 진짜 머뭇거리지 않고 내가 도움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나도 그냥 이렇게 거저 받은 거니까 나도 내가 거저 줄 수 있을 때 거저 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요. 저한테 이렇게 기회를 주셔서 정말 좋아요.”



“음악으로 ‘좋은 흔들림’ 줄 수 있는 사람 되고 싶어요”
강 씨는 자신의 음악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좋은 흔들림’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음악의 가장 큰 힘은 누군가의 삶을 담아낼 수 있다는 점이에요. 같은 노래여도 아이가 부를 때와 연륜 있는 분들이 부를 때와 이 가사의 깊이가 너무 달라지잖아요. 면접을 해보면 내가 음악으로 위로받았으니까 나의 음악으로 남을 위로해 주고 싶다고 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나의 삶이 누군가의 삶 속으로 들어가서 그 사람의 삶을 흔들 수 있고, 그 사람도 또 다른 누군가를 흔들 수 있는 ‘좋은 흔들림’이 이어지죠. 저도 누군가에게 ‘좋은 흔들림’을 주는 사람이고 싶고 제 음악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송치훈 동아닷컴 기자 sch5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