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련병원에 사직서 수리를 허용하며 전공의(인턴, 레지던트)에게 퇴로를 열어줬지만 아직까지는 사직이나 복귀 어느 쪽에서도 뚜렷한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날 “병원에서 일하는 전공의가 1000명을 넘었다”고 밝히며 조만간 복귀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전공의 상당수는 “집단 사직서를 제출했으니 일괄 수리하면 된다”며 여전히 병원의 면담 등을 거부하면서 버티는 모습이다.
● 전공의 복귀 닷새 만에 34명 늘어전공의 이탈이 100일을 넘긴 가운데 5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2024.6.5/뉴스1 ⓒ News1
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4일 기준으로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1만3756명) 중 1021명(7.4%)이 병원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30일(879명)과 비교하면 34명 늘어난 것이다. 레지던트 1만508명 중에선 913명(8.7%)이 병원에서 일하고 있고, 인턴 3248명 중에선 108명(3.3%)이 근무 중이다.
정부는 돌아올 경우 내년에 예정대로 전문의가 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약속한 만큼 고연차와 인기과 소속을 중심으로 30~50% 가량은 복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전공의 사이에선 “정부가 복귀한 경우에도 면허정지 처분을 다시 내릴 수 있다”는 루머가 확산되고 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전날 내부 공지를 통해 “조규홍 복지부 장관이 브리핑에서 ‘명령 철회의 효력이 장래를 향해 발생한다’고 했다”며 “명령을 취소하지 않고 철회하면서 다시 법적인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전공의 사이에선 “병원에 새로 사직서를 제출할 경우 4개월 동안 못 받은 임금을 청구할 수 없고 의료법 위반으로 징계나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글도 퍼지고 있다.
이에 복지부는 “전날 브리핑을 통해 복귀 전공의에 대해선 더 이상 면허정지 절차가 재개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는 해명자료를 내고 재차 복귀를 촉구했다.
● 전공의 측 정부에 1000억 원대 소송 예고의료계에 따르면 전공의들은 수련병원별로 복귀 관련 자체 투표를 진행했는데 10곳 이상에서 ‘전원 사직’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대구의료원은 5일 “이탈한 전공의 4명 중 3명의 사직서를 수리했고 나머지 1명은 복귀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상당수의 대형병원은 “일대일 면담을 거쳐 사직의사를 확인한 후 수리할 것”이란 방침이다. 마지막으로 설득을 해본 후 어쩔 수 없을 경우에만 사직 처리를 하겠다는 것이다. 5대 대형병원 관계자는 “전임의(펠로)가 대부분 복귀했고 진료보조(PA) 간호사도 대폭 확충해 현재 외래 진료는 전공의 이탈 전의 80%, 수술은 70%까지 회복됐다. 전공의가 20~30%만 돌아오면 업무가 90%까지 정상화돼 경영 위기는 넘길 수 있다”고 했다.
전공의 이탈이 100일을 넘긴 가운데 4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2024.6.4/뉴스1 ⓒ News1
하지만 상당수의 전공의들은 “이미 집단 사직서를 제출했으니 일괄 수리하면 된다”며 병원 면담에 응하지 않고 있다. 특히 필수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사직서 수리로 복귀를 독려한다는 것은 적어도 필수과에는 적용되지 않는 얘기”라며 “전공의 대다수가 필수과 전문의가 되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사직한 전공의들이 대거 개원가로 이동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편 의대 증원 관련 소송에서 의사단체를 대리해 온 이병철 변호사는 이날 “조 장관이 업무개시명령을 철회했기 때문에 효력을 상실했다”며 “전공의 1인당 3, 4개월 동안 못 받은 급여 1000만 원 씩 총 1000억 원 이상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