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창신동 허깨비주막. 주인장이 직접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있다. 김도언 소설가 제공
인터뷰 때문에 만나서 친교를 시작한 두 분의 변호사와 출판사 대표 한 분과 함께 두어 달에 한 번 정도 모여 술추렴을 하는데, 이날은 출판사 대표가 추천한 곳이었다. 빈티지의 메카 동묘앞역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입구부터가 퍽이나 클래식한 주막이었다. 주인장은 1970년대 이래 대학가를 대표하는 중창서클 쌍투스 출신으로 대학가요제에 참가하기도 했던 김동수 선생. 이곳을 추천한 출판사 대표 역시 쌍투스 출신으로 김 선생에겐 새까만 후배뻘이었다.
김도언 소설가
이게 다 노포이기에 가능한 풍경이다. 생각해 보자. 이제 막 오픈한 말끔한 펍이나 요즘 유행하는 오마카세 같은 집에서 누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사정이 어떨까. 틀림없이 민원이 들어가고 민망한 표정의 종업원이 다가와서는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주의를 주었을 거다. 그런데 노포에서는 돌연한 기타 소리와 노랫소리가 전혀 이물스럽지 않다. 이걸 양해하고 받아들이는 풍습은 당연히 성문법은 아닐 터. 아름다운 톨레랑스라 할 것이다.
김동수 선생이 여기에 주막을 연 것은 2004년 9월. 곧 20년을 꼬박 채우는 셈이다. 대기업 비서실에 근무하면서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그가 자신의 본래면목을 좇아 막걸리 한 잔에 노랠 부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것. 왜 주막 이름이 허깨비인가요? 내가 못 참고 물으니 선생이 대답한다.
“살아보니 모든 게 다 허깨비 같더라고요. 허깨비 아닌 게 없더라고요.”
아, 이런 선지식이 어딨나. 내가 감동했던 것은 또 있다. 보통 김 선생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예인들이 운영하는 노포는 영업시간이 주인장 맘대로다. 열고 싶을 때 열고 닫고 싶을 때 닫는 식이다. 모처럼 찾아갔는데 이유도 없이 문이 닫혀 있을 때의 망단감이라니! 그런데 김 선생은 그런 무단을 싫어해서 엄격하게 영업시간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노포 중에는 자율과 사사로운 정을 지나치게 좇다가 신의를 잃는 곳이 적잖다. 그런데 여기 허깨비주막은 그 모두를 애써 잘 지켜가고 있다. ‘쌍투스(Sanctus)’라는 말뜻처럼 이만하면 노포도 얼마든지 거룩해질 수 있겠다.
김도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