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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재건축 공사비, 검증할 ‘심판’이 없다

입력 | 2024-06-07 03:00:00

公기관 부동산원 담당인력 10명뿐
시공사-조합 갈등속 주택공급 지연





지난해 6월 한국부동산원에서 공사비 증액에 대한 검증을 받았던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 부동산원은 1621억 원 상당의 공사비 증액분 중 377억 원(23.3%)을 증액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 권고는 실제 공사비 책정에 반영됐다. 하지만 부동산원 검증 규모는 시공사가 조합에 인상을 요구한 전체 1조1385억 원의 14.2%에 불과했다. 감액 여지가 더 있었다는 의미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부동산원 인력이나 역량이 금융 비용이나 공사 지연에 따른 비용까지 검증하기엔 역부족이어서 일부만 맡긴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공사비 갈등으로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지연 또는 좌초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지만 공공 검증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시공사와 조합이 서로 네 탓만 하는 상황에서 ‘심판’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6일 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이 기관의 공사비 검증 건수는 30건이었다. 공사비가 5% 이상 오른 경우 검증을 의무화한 2019년(3건)의 10배다. 5명으로 출발한 담당 인력은 현재도 10명 안팎에 그치고 있다. 민간의 전문 관리업체에 공사비 검증 등 사업 관리를 의뢰할 수도 있지만 세부 사업 명세를 공개하길 꺼리는 폐쇄적인 관행을 뚫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원 공사비 검증 인원 10명뿐… 민간위탁은 시공사가 꺼려


[삐걱대는 재건축 사업]
재건축 공사비 검증 부실
부동산원 공사비 조정 안지켜도 그만… 시공사도 조합도 검증역량 불신
전문가 “조합 운영비 금융권서 조달… 시공사 선정 지금보다 뒤로 미뤄야”

서울 서초구에서 진행된 한 재건축 사업은 한국부동산원의 검증이 요식 행위에 그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경우다. 이 사업장 조합은 건설사로부터 요구받은 공사비 증액분 4000억 원 중 약 1000억 원에 대해 부동산원에 검증을 맡겼다. 그런데 조합과 시공사는 이미 증액 합의를 마친 상태였다고 한다. 증액분이 전체 공사비의 5% 이상이면 의무적으로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부동산원에 검증을 의뢰할 수밖에 없었던 것. 실제 공사비는 부동산원 검증 결과와 상관없이 애초 합의대로 결정됐다. 조합 관계자는 “부동산원이 검증 시 관행적으로 공사비를 깎는다고 알고 있어서 실제 증액 공사비보다 좀 더 늘린 상태에서 검증을 의뢰했다”며 “어차피 검증 결과를 신뢰할 수도 없고 수용해야 할 의무도 없지 않느냐”고 했다.

● “부동산원 공사비 검증은 형식적 절차”

공식적으로 조합이 공사비 증액을 검증받을 수 있는 수단은 부동산원이 유일하다. 하지만 서초구 현장의 사례처럼 실효성이 없는 단순 행정 절차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행법상 부동산원의 검증 결과에 따른 공사비 조정은 권고 사항일 뿐이기 때문이다. 조합이든 시공사든 부동산원의 검증 결과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시공사도 할 말은 있다. 우선 부동산원의 검증 역량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 공사에 필요한 원자재나 인력 투입량을 산출하는 적산(積算) 업체들 사이에서도 같은 얘기가 나온다. 국내 한 적산 업체 대표는 “공사비에는 각종 자재 외에도 조합 운영비, 금융 비용 등이 전부 포함되는데 부동산원이 이를 모두 검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조합 역시 부동산원 검증 결과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 부동산원의 검증은 기본적으로 시공사가 건네는 자료를 토대로 이뤄진다. 시공사의 자료 자체를 믿을 수 없다면 부동산원의 검증 역시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런 맹점을 보완하기 위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이 지난 국회에서 발의되기도 했지만 실질적인 논의는 진행되지 않았다. 이 법안에는 공사비 등에 대한 변경 계약이 이뤄지는 경우 변동분에 대한 검증 결과를 반영했는지에 대해 공사비를 검증했던 정비사업 지원 기구에 반드시 통보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부동산원 측은 이에 대해 “공사비는 조합과 시공사 간 민간 영역이기 때문에 검증 결과 적용을 의무화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 민간 검증 가능하지만 시공사 반대 많아

조합들 중 스스로 공사비 증액 등을 검증할 역량을 갖춘 곳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공공기관에 기대지 않으려는 곳들 중에는 대안으로 건설사업관리(CM) 회사를 협력업체로 고용하려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조차도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폐쇄적인 관행에 막히기 일쑤다.

서울 잠실의 한 재건축 사업장은 최근 시공사들이 재건축 수주에 소극적으로 나서면서 유찰이 거듭되다 한 건설사와 수의계약을 맺었다. 당초 조합은 CM 업체를 써 사업 전반을 관리하도록 할 계획이었지만, 건설사가 반대하고 나섰다. 조합 관계자는 “수의계약이다 보니 건설사 입김이 강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CM에 일을 맡기는 건 없던 일이 됐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건설사 관계자는 “CM은 일종의 시어머니 같은 역할”이라며 “요즘처럼 공사비 급등으로 시공사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런 불편을 감수할 곳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국내 정비사업 관행상 시공사들이 초기 조합 운영비를 지원하는 게 일반적이다. 일단 수주를 한 시공사의 경우 CM과 함께 일하기를 고집하는 조합의 운영비를 끊는 등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서울 등 수도권 주요 사업장에서도 협력업체를 고용하려는 조합의 운영비를 시공사가 중단하는 식으로 압박해 고용 자체가 무산된 경우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 “수주용 아닌 ‘진짜 설계’로 시공사 선정해야”

전문가들은 조합과 시공사 간 공사비 분쟁을 끊기 위해선 시공사 선정 단계를 지금보다 뒤로 미루는 방안을 신중하게 고려해 볼 만하다고 제안한다. 현재는 사업 시행 인가 전 시공사를 선정한다. 그래야 조합이 조합 운영진의 임금과 각종 행정 비용 등을 시공사를 통해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공사를 정비사업 초기에 선정하기 때문에 이때 결정된 공사비는 착공 전후와 통상 수천억 원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수주용 공사비’와 ‘진짜 공사비’의 차이가 커도 너무 크다는 것이다. 시공사 입장에서도 정비사업 특성상 통상 10년씩 걸리다 보니 정확히 공사비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 때문에 조합 설립 초기 운영비를 금융권 펀드나 리츠(REITs·부동산 투자 전문 펀드)를 통해 확보함으로써 시공사 의존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후 최종 설계안을 바탕으로 시공사를 뽑으면 공사비 변동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 국토교통부는 경기 성남시 분당, 고양시 일산 등 1기 신도시 선도지구 정비사업에 이 같은 방식을 도입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국내 한 CM 업체 임원은 “금융회사를 통한 조합 운영비 지원이 공사비 분쟁을 줄일 시작점이 될 수 있다”며 “초기 조합 운영비를 대주는 금융사엔 향후 이주비 대출 등이 연계되도록 하는 등의 당근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사비 인상의 원인 중 하나인 조합의 고급화 요구도 보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백준J&K도시정비 대표는 “아파트의 외부 마감재는 고급화해 브랜드 효과를 누리고, 내부 마감재는 기본 품목을 선택하는 등 조합과 건설사도 스스로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