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도광산 내 터널. (서경덕 교수 제공) 2022.4.7/뉴스1
외교부 당국자는 7일 기자들과 만나 “우리 입장이 충분히 반영됐다고 판단하면 정부는 컨센서스(전원 동의)가 형성을 막지는 않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일본이 등재 과정에서 강제동원을 포함한 사도광산 전체 역사를 반영하는 조치를 성실히 취한다면 한국이 나서 강력하게 등재를 반대하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당국자는 “하지만 우리 입장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반대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니가타현에 있는 사도광산은 17세기 에도 막부 시대에 고순도의 금·은을 생산하던 일본 최대 규모 광산이다. 태평양 전쟁 당시에는 전쟁 물자 확보에 이용됐다. 일본은 사도광산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하면서 대상을 ‘에도 시대’로 한정했다. 강제동원이란 역사를 감추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불거졌다. 이코모스는 최근 “전체 역사를 현장에서 포괄적으로 다루는 전시 전략을 만들고 시설 설비를 갖추라”는 권고와 함께 ‘보류(refer)‘ 결정을 내렸다.
이코모스는 보류 권고에서 “광업 채굴이 이뤄졌던 모든 시기를 아울러 추천 자산에 관한 전체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설명 및 전시 전략을 책정하고 관련 시설과 설비 등을 갖추라”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하며 기간을 16~19세기 중반으로 한정한 것에 대한 지적으로 풀이된다. 일본은 등재 추진 때부터 일제강점기에 자행된 조선인 강제노역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정부 “日, 약속 안 지킨 전례”… 日 “韓과 정중히 논의”
이코모스의 권고 배경에는 일본이 2015년 ‘군함도’로 알려진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 하시마(端島) 탄광을 '메이지시대 산업혁명 유산'으로 등재하면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도 일본은 조선인 강제동원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대상 시대를 메이지 시대로 한정했다. 한국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조선인 강제동원 사실을 포함한 전제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일본은 결정문에 "과거 1940년대 한국인 등이 자기 의사에 반해 동원되어 '강제로 노역'(forced to work)했던 일이 있었다"는 각주(footnote)를 달고 등재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세계유산 등재 이후 조선인 강제동원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유네스코는 지난해 9월 “전체 역사를 제대로 알리겠다는 약속을 지키라”고 일본을 상대로 추가로 권고한 상태다.이코모스가 보류 결정을 했다고 해서 일본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작업이 좌초됐다고 볼 수는 없다. 이코모스가 지난해 ‘보류’로 권고했던 8건 중 8건이 모두 등재결정됐고, 반려 권고했던 9건 중 6건도 등재결정된 것으로 파악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당사국들이 등재에 대해서는 후한 결정을 내리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