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0일 서울 동대문에서 ‘로또 아파트’ 청약 접수 2: 수억 원대 시세차익 기대에 수십만 명 몰리기도 3: 당첨자 자격 미달 등이 주원인…경기지역에 30% 4: 무순위 청약 발생원인 따지는 옥석 가리기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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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순위 청약 아파트는 수억 원대의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경우가 적잖아 ‘로또 아파트’로 불린다. 올해 2월 무순위 청약에서 100만 명이 넘는 청약자가 몰려 화제가 됐던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 동아일보 DB
오는 10일 서울 동대문구에서 무순위 청약 접수에 나설 아파트 ‘한양수자인 그라시엘’를 소개하는 기사에 붙여진 제목입니다. 한양수자인 그라시엘은 청량리역 인근에 위치한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로, 지하 8층, 지상 59층, 4개 동, 1152채의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이 가운데 84㎡(전용면적 기준) 아파트 1채(37층)가 무순위 청약으로 나옵니다.
이 아파트가 로또로 불리는 이유는 공급가가 매우 낮기 때문입니다. 2019년 최초 분양 당시 책정된 금액에 기타 부대경비를 더해 10억 7210만 원에 불과합니다. 현재 동일 규모 아파트의 호가는 최저 15억 원 정도입니다. 인근 단지인 청량리역 롯데캐슬 SKY-L65 84㎡는 올해 2월 18억 7830만 원(58층)에 거래됐습니다. 최소 4억 원 이상의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런 이유들로 치열한 청약 전쟁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로또로 불리는 무순위 청약 물량이 심심찮게 나오면서 수십만 대 1의 청약경쟁률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1일 세종행정중심복합도시에서 무순위 청약에 나섰던 ‘세종 린 스트라우스’(모집 물량·1채)에는 43만여 명이 몰렸습니다. 4월 경기 하남시 감일지구 ‘감일 푸르지오 마크베르’(2채)는 신청자가 60만 명에 육박했습니다. 2월 서울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3채)에는 101만여 명이 신청하며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워 화제가 됐습니다. 특히 이 아파트 59㎡에는 50만 명이 넘게 몰리면서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일시적인 접속 장애가 발생했을 정도입니다.
무순위 청약은 ‘줍줍’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줍고 줍는다’는 말의 줄임말로, 추수 이후 떨어진 이삭을 줍는 것과 같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무순위 청약이 발생하는 이유는 여럿입니다. 또 모든 무순위 청약물량이 큰 인기를 누리는 것도 아닙니다. 아예 인기가 없어 미분양된 아파트라면 청약자들로부터 외면받는 경우도 나옵니다. 지난달 서울 강북구에서 무순위 접수에 나섰던 ‘수유 시그니티’가 대표적으로, 22~48㎡, 21채 모집에 청약 접수가 한 건도 없었습니다.
● 줍줍 아파트 발생하는 까닭
무순위 청약 아파트는 크게 ①무순위 사후 접수 ②임의 공급 ③계약 취소 주택 재공급 ④조합원 취소분 등으로 나뉜다. 사진은 올해 처음으로 청약통장 만점자 당첨 기록을 세운 서울 서초구 ‘래미안원베일리’의 모습이다. 이 아파트는 조합원 취소물량이 무순위 청약으로 나왔다. 동아일보 DB
줍줍 보고서에 따르면 무순위 청약은 미계약이나 미분양 물량으로 나온 잔여 물량에 대해 신청을 받아 무작위 추첨 방식으로 당첨자를 선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청약통장 유무와 거주지 제한, 무주택 여부에 관계 없이 청약할 수 있습니다.
반면 정식 분양이라 할 수 있는 일반 청약은 청약통장 가입 기간이나 납입금액에 따라 순위가 결정됩니다. 또 무주택 기간, 부양가족수, 청약통장 가입 기간에 따라 가점을 산정하여 높은 순서대로 입주자를 모집합니다.
무순위 청약은 입주자 모집 공고 이후 잔여 물량의 발생 원인에 따라 ①무순위 사후 접수 ②임의 공급 ③계약 취소 주택 재공급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일단 전국 어디에 살든 청약 통장이 없어도 유주택자들도 가능합니다. 또 분양가도 2~3년 전 정식 청약 그대로인 경우가 많아 경쟁률이 수십만 대 일까지 치솟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포동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임의공급은 최초 및 무순위 입주자 모집 공고 시 경쟁이 발생하지 않아 미분양이 된 경우입니다. 공급 주택수보다 청약자수가 적은 경우로 잔여 물량이 많은 편입니다. 다만 유주택자들도 가능하고 청약 통장 없이도 청약할 수 있습니다. 지역 제한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계약 취소 주택 재공급은 불법 전매나 위장 전입, 위장 이혼, 통장 매매 등 공급 질서 교란 행위로 인해 계약 해제 세대가 발생한 경우에 해당됩니다. 정부에 의해 강제적으로 계약이 취소된 경우로 무순위 사후 접수와 임의 공급에 비해 물량이 적은 편입니다.
이 유형은 무순위 사후 접수와 여러 면에 비교가 됩니다. 무순위 사후 접수가 당첨자가 아예 계약을 하지 않은 경우라면 이 유형은 계약을 한 뒤 취소된 물량입니다. 무순위 사후 접수는 전국에 유주택자, 무주택자 모두 다 청약이 가능합니다. 반면 이 유형은 해당 지역에 사는 무주택만 도전할 수 있습니다.
줍줍보고서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조합원 취소분을 무순위 청약, 즉 줍줍 아파트에 포함시키기도 합니다. 재건축이나 재개발에서 조합원이 계약하지 않은 물량입니다. 다른 무순위 청약과 달리 청약 통장이 있어야만 청약 자격이 주어집니다. 또 청약 가점제의 적용도 받습니다. 정식 분양 절차가 동일한 셈입니다.
올해 첫 청약 통장 만점자가 당첨됐다는 서울 서초구 ‘래미안 원밸리’가 여기에 해당합니다.지난달 20일 진행된 무순위 청약에서 1채 모집에 3만 5076명이 지원했는데, 당첨자의 청약 가점이 84점 만점이었습니다. 청약 만점은 7인 이상 가구가 15년 이상 무주택으로 지내야 받을 수 있는 점수입니다.
● 줍줍 아파트 청약도 양극화
무순위 청약 아파트도 최근 미분양 물량 증가와 함께 양극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옥석가리기 노력이 요구된다. 대우건설이 경기 하남시 감일지구에 선보인 ‘감일 푸르지오 마크베르 투시도. 이 아파트는 지난 4월 무순위 청약 접수에서 무려 60만 여명의 신청자가 몰렸다. 대우건설 제공
이에 정부가 관련 제도를 정비했고, 현재는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을 통해서 무순위 사후 접수-임의 공급-계약 취소 주택 재공급 등을 명시하고, 입주자 모집공고를 게재한 뒤 청약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만 비규제 지역에서 시행되는 무순위 사후 접수와 임의 공급의 경우에는 한국부동산 청약홈을 통한 입주자 모집이 선택사항입니다. 즉 이전처럼 사업자가 직접 모집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한편 최근 2년 간 진행된 무순위 청약을 조사한 결과 가장 많은 유형은 ‘무순위 사후 접수’였고, 지역은 경기도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줍줍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3월 이후 최근 2년 간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을 통해 입주자 모집공고가 진행된 무순위 청약은 모두 584건으로 집계됐습니다. 공급 물량은 1만 7271채였고, 누적청약자수는 무려 300만 명을 넘었습니다.
유형별로 보면 무순위 사후 접수가 398건으로 68.2%를 차지했습니다. 물량은 1만 4001채로 81.1%에 달했습니다. 신청자도 258만 4732명으로, 평균 185.6대 1의 경쟁률을 보였습니다.
임의공급은 102건, 2911채 모집에 2만1321명이 신청해 7.3대 1의 비교적 낮은 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반면 계약 취소 주택 재공급의 경우 84건, 359채에 불과했지만, 신청자가 46만 2661명이 몰렸습니다. 그 결과 평균 경쟁률이 1288.7대 1로 치솟으며 가장 높았습니다.
지역별로 보면 공급 물량은 경기(5123채)가 전체의 30%로 가장 많았고, 평균 경쟁률은 서울(519대 1)이 경기(113대 1)보다 높았습니다. 또 공급 물량이 가장 적은 세종(26채)의 경우 평균 경쟁률이 4585대 1에 달했습니다.
최근 무순위 청약에서 나타나고 있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지역별 양극화입니다. 동일한 무순위 사후 접수 물량인데도 올해 2월 접수한 ‘디에이 퍼스티어 아이파크’(3채)에 101만여 명이 몰렸습니다. 하지만 불과 한 달 전인 1월 경기 성남시에서 분양한 ‘산성역 자이 푸르지오’(4채)의 경우 6만 9700여 명에 머물렀습니다.
미분양 증가로 임의 공급과 다회차 모집 단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미분양 아파트는 2021년 9월 1만 3000채 수준까지 줄었지만 2022년 12월 이후 월 평균 6만 채를 웃돌고 있고, 준공 후 미분양 물량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특히 2023년 11월 이후 미분양 아파트가 크게 증가하면서 임의공급 방식의 비중도 2022년 3월 이후 최근 2년 간 평균 17%에서 올해 1~3월에는 46%로 껑충 뛰었습니다. 또 최근 진행된 임의공급 청약 단지 중 상당수는 여러 번 입주자를 모집했음에도 미분양이 발생하면서 반복적으로 모집 공고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부작용 최소화 방안 필요
무순위 청약 가운데 주요 3가지 유형의 발생 원인과 신청자격 설명. 동아일보 DB
최근의 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줍줍 아파트가 무조건 로또는 아닐 수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종훈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도 보고서에서 “무순위 청약에서도 거주 지역, 특별 공급 대상 여부 등의 지원 자격과 재당첨 제한 등의 차이가 존재한다”며 “잔여 세대 발생 원인별 세부 특징을 확인하고 청약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즉 옥석 가리기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자금 조달 계획도 촘촘히 따져봐야 합니다. 무순위 청약 대상은 대부분 완공됐거나 다 지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몇 달 안에 분양가 전액을 치러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난 5월 청약 접수한 ‘래미안원베일리’의 경우 분양가가 유상옵션을 포함해 약 19억 6000만 원에 달하는 데, 7월 말까지 한꺼번에 납부해야 합니다. 따라서 목돈을 급히 만들 자금 여력이 없다면 당첨이 되고도 계약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무순위 청약으로 인한 부작용에 대한 대책도 필요해 보입니다. 대표적인 게 ‘묻지마 청약’으로 인한 시장 왜곡입니다. 청약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판단 없이 무작정 청약에 나섰다가 청약 당첨 후 포기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정작 실수요자의 당첨 기회는 줄어드는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또 추가적으로 입주자 모집공고를 진행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불필요한 업무 및 비용도 해결 과제입니다.
정 책임연구원은 이를 막기 위해 “거주 자격이나 보유 주택수 등 최소한의 자격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합니다. 또 “다회차 입주자 모집 공고를 하는 경우 자격 기준을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일각에서는 무순위 청약이 사실상 현금 부자들의 잔치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합니다. 높은 시세 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아파트일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그만큼 자금력이 뒷받침돼야 청약에 성공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무순위 청약이 주거 지원이 아니라 시세차익을 위한 재테크 수단으로 변질되고, 이는 결국 부동산 시장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최민섭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교수(부동산학)는 “현행 무순위 청약방식은 주택시장 시장을 투기장화하면서 부동산 시장에 대한 사회 전반의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하고, 묻지마 청약 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지나치게 크다”며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