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그림자/계승범 지음/264쪽·1만7000원·사계절
“명 황제에게 죄를 짓느니 차라리 성상(광해군)께 죄를 짓겠나이다.”
1619년 광해군에게 올린 조정 신료들의 ‘협박조’ 상소는 4년 뒤 쿠데타(인조반정)를 예고한 것이었다. 당시 조선은 사대(事大)의 의리를 좇아 1만4000명의 군사를 요동에 보내 명을 도왔다. 그러나 사르후 전투에서 조명 연합군이 후금(훗날 청나라)에 궤멸적 패배를 당한다. 이에 광해군이 명나라의 증병 요청을 외면하며 후금과 화해를 모색하자, 신료들이 집단 항명에 나선 것. 이는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척화파와 주화파의 치열한 논쟁으로 이어진다. 망국 직전의 대국(명)을 위해 조선 관료들이 망국의 위기를 무릅쓴 이유는 무엇일까.
서강대 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신간에서 인조반정과 병자호란 당시 굴욕적인 삼전도 항복이 모두 조선의 국가정체성과 직결돼 있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단순히 딸깍발이 선비들의 사대주의 집착이 낳은 비극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것. 조선 성리학의 정치질서에서 명과 조선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 혹은 왕-사대부-평민의 충효(忠孝) 관계와 같았다는 얘기다. 결국 명에 대한 사대 의리를 지키지 않는 건 국내 정치의 정당성을 잃을 수 있음을 뜻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