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완준 정치부장
요즘 각국 외교장관 중엔 회담 뒤 상대국과 휴대전화 번호를 주고받는 이들이 많다. 이후 메신저를 통해 바로바로 의견을 교환한다. 정부 당국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조태열 외교부 장관도 그중 한 명이다. 급히 확인해야 할 각국 입장이나 정보가 있으면 비행기에서, 차로 이동 중에도 상대국과 직접 소통한다고 한다. 이를 통해 외교정책 의사결정을 위한 중요한 근거를 확보할 때가 적지 않다.
미 동맹 호주도 우리와 같은 선택 확인
민감한 팔레스타인 관련 정책을 결정할 때도 그런 일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팔레스타인 유엔 회원국 가입은 한국의 동맹 미국이 거부하는 이슈다. 이번에도 미국은 이스라엘과 함께 반대표를 던졌다.
한국의 선택은 이례적이다. 2012년 팔레스타인의 옵서버(참관국) 인정 표결 때는 기권했었다.
찬성표를 던지기 한 달 전인 올해 4월 18일에도 정부는 팔레스타인 유엔 가입을 권고하는 결의안의 안보리 표결 때 안보리 이사국 자격으로 참가했다. 그때도 찬성표였다. 상임이사국인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해 결의안은 부결됐다.
미국이 반대하는 이슈에서 두 차례 연속 한국이 미국과 상반된 입장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도 4월 안보리 표결에 이어 유엔 총회 때 또 찬성표를 던지는 건 부담이었다. 실제 “미국을 고려해 이번엔 기권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한국만 미국 동맹에서 이탈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 조 장관은 미국의 다른 동맹들이 찬성표를 던진다면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 장관은 이전에 호주 측과 팔레스타인 유엔 가입 문제를 토론한 적 있었다. 호주 측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서로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을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였다. 조 장관은 남북도 서로 인정하지 않지만 모두 유엔에 가입해 있다고 얘기했다는 게 당국자들의 전언이다. 호주 야당은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을 격렬히 반대했기에 호주가 5월 유엔 총회에서 찬성할지는 미지수였다.
표결 전 조 장관은 메신저로 호주 측과 의견을 나눴다. 호주 측이 곧바로 답했다. 찬성표를 던지기로 했다는 것. 조 장관은 마음이 놓였다. 미국의 파이브아이스 기밀정보 동맹이자 오커스 동맹인 호주가 찬성하면 부담이 적다. 유엔 총회 결과 일본도 찬성했다. 한미 관계의 까다로운 외교 이슈에서 실리도 명분도 얻었다.
현장 외교전, 정책 혼선에 참고해 보라
조 장관이 한 것은 국내로 보면 정책 발표 전 민심 파악을 위한 여론조사인 셈이다. 해외 직구 금지 등에서 연달아 보인 정책 혼선 논란이 떠올랐다. 민심과 동떨어진 정책을 고집하다 벌어진 일들이다. 문제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는 정책입안자들은 팔레스타인 문제 외교전을 참고해 봐도 좋을 것이다.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