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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박테리아’ 정복할까… AI가 항생제 후보 대거 발견

입력 | 2024-06-10 03:00:00

국제 공동 연구팀, 유전체 분석
토양-식물 등 자연 미생물 활용… 후보물질 86만3498개 확인
인공지능, 연구 속도 대폭 단축… 유력 후보물질 63개까지 추려
“내성균 풍선처럼 터트려 파괴”



게티이미지코리아



인공지능(AI)이 역대 최대 규모로 항생제 후보물질을 찾아냈다. 특정한 환경에 존재하는 미생물 집단의 유전체(메타게놈)를 광범위하게 분석해 잠재적인 항생제 화합물을 추려냈다.

기존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병원성 세균은 현대 의학으로도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 환자의 회복력에 의존해야 한다. 방대한 데이터를 다루는 AI 기술의 힘으로 자연 속에서 발견한 새로운 항생제 물질이 ‘슈퍼박테리아’로 불리는 항생제 내성균 치료의 돌파구가 될지 주목된다.

루이스 페드루 코엘류 호주 퀸즐랜드공대(QUT) 교수가 이끈 국제 공동 연구팀은 세균의 유전체 샘플 8만7920개와 자연에서 얻은 미생물의 유전체 혼합물 6만3410개를 가상으로 조합해 항생제 내성균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는 후보물질 86만3498개를 확인하고 연구 결과를 5일(현지 시간) 국제 학술지 ‘셀’에 발표했다.

연구 논문의 공동저자인 세사르 데 라 푸엔테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한때 수년이 걸렸던 작업을 이제는 컴퓨터를 사용해 불과 몇 시간 안에 할 수 있게 됐다”며 “특히 AI는 새로운 약물 후보물질을 발견하는 능력을 가속화시켰으며 새로운 항생제 후보를 대규모로 발견하는 수준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항생제 내성은 세균이 세대에 걸쳐 유전자 변화를 거듭하면서 더 이상 항생제의 영향을 받지 않고 증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특히 여러 항생제에 대한 내성 유전자를 동시에 갖게 된 다제내성 세균은 중증 환자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마땅한 치료법 없이 환자가 세균을 극복하는 것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항생제 내성균에 감염된 환자는 다른 환자를 전염시킬 위험이 있어 격리되거나 아예 의료기관 입원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많다. 치료가 중단되거나 충분한 처치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연구팀에 따르면 항생제 내성균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목숨을 잃는 연간 환자 수는 전 세계적으로 127만 명에 이른다.

연구팀은 기존 항생제 내성균에 저항할 수 있는 새로운 항생제 후보물질을 찾기 위해 자연 속에 존재하는 미생물에 주목했다. 미생물이 갖는 아미노산 단위체인 펩타이드에서 천연 항균물질을 찾을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운 것이다. 문제는 미생물에서 유래한 천연 펩타이드 중에서 어떤 펩타이드가 항균 기능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수만 개의 펩타이드가 수많은 항생제 내성균에 대해 갖는 효과를 사람이 일일이 확인하는 데는 막대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방대한 작업을 AI가 수행하면서 시간이 대폭 단축됐다. 연구팀은 머신러닝(기계학습)을 통해 AI가 다양한 천연 펩타이드가 조합됐을 때 갖는 효과를 예측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AI가 골라낸 천연 펩타이드는 실제로 높은 확률로 항생제 내성균에 효과를 보이는 것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또 선별된 천연 펩타이드로 합성한 항생제 후보물질 100가지를 11종류의 항생제 내성균에 적용했다. 그 결과 63개의 후보물질이 한 종류 이상의 항생제 내성균에서 세균의 성장을 완전히 멈추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강력한 효과를 보인 후보물질은 동물 실험에서도 높은 효과를 보였다. 연구팀은 “항생제 내성균이 가진 외부 보호막을 파괴하고 세균을 마치 풍선처럼 터뜨렸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후보물질의 원재료가 된 천연 펩타이드는 인간의 타액, 토양, 식물 등 다양한 곳에 서식하는 미생물에서 얻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자연과 AI 기술이 만나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항생제 발견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정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hess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