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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밖과 집 안 생활이 다른 아이, 다양한 본모습입니다[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입력 | 2024-06-09 22:54:00

〈206〉 본성 그대로 이해해주기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유난히 낯가림이 심한 아이가 있었다. 친구들을 사귀고 싶은 마음은 많은데, 처음 친구들에게 다가갈 때 굉장히 쭈뼛거리고 어색해했다. 그래서 생각만큼 친구들을 잘 사귀지 못했다. 아이는 초등학교 때 이런 일을 반복적으로 겪고 난 후, 중학교에 입학해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친구를 사귀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학기 초반에 자기가 아닌 모습으로 살았다. 빨리 친구를 사귀는 아이들처럼 적극적이고 활달해 보이려고 애를 썼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지나치게 내성적이어서 친구를 빨리 못 사귀는 아이들 중에는 이런 아이가 종종 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아이는 혼자 있을 때 혹은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조차 누구도 어쩌지 못할 외로움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을 꾸며서 내보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어느 순간부터는 친구들 사이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사람은 자신을 다른 모습으로 포장할 때 외로워진다. 누구나 ‘타인이 생각하는 나’와 ‘본래의 나’ 사이에는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차이가 크면 클수록, 나를 남들이 생각하는 나에 맞춰 가려고 하면 할수록 외로움은 더 커진다.

친구들 사이에서 리더 노릇을 하는 아이가 있다. 친구들은 모두 그 아이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 아이가 집에만 오면 부모에게 “너는 공부만 잘하면 뭐하냐? 방을 이렇게 돼지우리로 만들어놓고 다니는데. 네 친구들도 너 이런 거 아니?”라는 소리를 듣는다. 이럴 때 아이는 엄청난 괴리감을 느낀다. ‘도대체 나는 뭐지? 나는 어떤 인간인 거야?’ 하는 생각이 들면서 외로워진다. 부모는 “집에서는 이따위로 하면서 밖에 나가 전교 회장 하면 뭐하니? 집에서나 잘해. 먼저 인간이 되어야지”라고 말해 놓고 ‘집에서도 잘해야 해’라고 얘기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부모의 말에는 ‘모욕’이 담겨 있다.

사실 하나의 모습으로 사는 사람은 없다. 누구에게나 다양한 모습이 있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마음에 들고 누군가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아이의 일면을 두고 모욕감을 주면 아이는 자신의 진솔하고 다양한 모습을 통합하기 어려워진다. 감정이 먼저 상해 버려서 자기 모습을 편안하게 마주하지 못한다. 최악의 경우 자기 자신을 부정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아이는 집에서나 밖에서나 외로운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 내 모습을 보이면 비난받을까 봐 남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게 되고, 진짜 내 마음을 잃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가 공부도 잘하고 리더십도 있어서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는 많지만 정리 정돈을 잘 못하고 산만한 편이라면 “우리 아들, 정리하는 건 좀 약하네. 잘하는 게 많으니까 큰 문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정리 정돈이 너무 안 되는 것 같아. 고칠 수 있는 건 좀 고쳐볼까?”라고 말해 주는 것이 좋다.

아이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타인에게도 그것을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방법은 의외로 어렵지 않다. 아이의 자연스러운 본성 자체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우리 부모들은 그 누구보다 아이의 단점이나 미숙한 면을 가장 많이 보게 되는 사람들이다. 그것을 일일이 지적하고 당장 고쳐 주려고 들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가 청소년기라면 더더욱 많은 것들을 좀 눈감아 주었으면 한다. 부모부터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비난하지 않고 편안하게 받아들여 주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곤 한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너라는 사람의 본질은 변함이 없어. 누가 너에게 나쁜 말을 했다고 해서 네가 형편없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칭찬을 들었다고 해서 네가 갑자기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지. 너는 그냥 너인 거야. 그 자체로 존귀하고 소중해. 누가 너를 인정하든 비난하든 그게 너의 본질 자체를 훼손하거나 변질시킬 수 없다는 걸 늘 기억하렴.” 이런 말들이 아이의 자존감을 채워 준다.

성적 때문에 자신을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아이에게 “성적을 그따위로 받아오면서 인기 많아 뭐하니?”라고 하는 게 아니라 “성적 좀 떨어졌다고 해서 너라는 사람의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니야. 기죽을 필요 없어. 열심히 해보렴”이라고 말해 주는 것이다. 부모가 신뢰를 보이면 아이는 다시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친구가 못생겼다고 놀려서 풀이 죽어 있는 아이라면 “그건 걔 생각이지. 그 아이 생각이 언제나 옳은 건 아니잖아. 엄마가 보기엔 넌 충분히 예뻐. 걔 말 때문에 네가 외모를 바꿀 필요는 없는 거야. 네가 보기에 넌 어때? 괜찮지? 그럼 괜찮은 거야. 자신감을 가져”라고 해준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믿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확신, 이것을 바탕으로 아이들은 한 단계 더 커 나간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