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차와 충돌 피하려다 벌어진 사고 중과실 여부, 경위 등 종합 판단해야”
중앙선을 침범해 사고를 냈더라도 전후 사정을 살피지 않고 무조건 ‘중대한 과실’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재단법인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이 이모 씨를 상대로 제기한 양수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씨는 1997년 1월 서울 종로구의 한 고가도로에서 차를 몰다 중앙선을 침범해 맞은편 차량과 부딪쳤다. 상대 차량에 타고 있던 3명 중 1명이 사망하고 2명은 중상을 입었다.
채무자회생법에 따르면 채무자의 중대한 과실로 타인의 생명이나 신체를 침해해 발생한 손해배상은 비면책 채권에 포함된다.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은 이를 근거로 이 씨의 중대한 과실로 교통사고가 발생한 만큼 이 씨에 대한 채권은 면책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 씨는 “법원 결정에 따라 이미 면책됐다”고 맞섰다.
1심과 2심은 모두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의 손을 들어줬다. 보험사가 보유한 채권이 비면책 채권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중대한 과실’ 여부는 사고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며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은 “이 씨는 1차로를 주행하던 중 차로에 다른 차가 진입하는 것을 발견하고 충돌을 피하려다가 중앙선을 침범했고, 제한속도를 현저히 초과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채무자회생법상 중대한 과실이란 일반인에게 요구되는 주의 의무를 현저히 위반하는 것”이라며 “이 씨가 중대한 과실에 따라 사고를 일으켰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12대 중과실’에 해당하는 중앙선 침범도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미송 기자 cm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