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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조종엽]“괴롭힘 당했다” 거짓 신고… 법 악용하는 ‘오피스 빌런’

입력 | 2024-06-09 23:18:00



자동차 부품 업체, 보건소, 전투기 제작 업체, 시·군청, 금융회사, 해경, 대기업…. 모두 최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자살한 직원이 나왔거나 그랬다는 의혹이 제기된 곳이다. 괴롭힘 피해는 직종을 가리지 않는다. 자살로 끝난 산업재해의 절반 이상은 과로와 함께 직장 내 괴롭힘이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2019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됐지만 비극이 여전히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하지만 부당한 피해를 막는 법이 생기면 악용하는 이들도 나타나기 마련이다. 사적 이익을 노리거나 잘못을 지적하는 상사에게 복수하려고 없는 사실을 지어내 허위 신고를 하는 이들이다. 비자발적 퇴사로 인정받아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상사가 괴롭혔다’고 거짓 신고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정당한 업무 지시를 상습적으로 이행하지 않다가 징계를 받게 되자 ‘괴롭힘을 당했다’고 신고하기도 한다. 인사 발령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부서장을 갈아 치우려고 거짓 신고하는 사례도 있다. 좋은 취지의 법이 ‘오피스 빌런’(직장 내 악당)의 무기가 된 셈이다.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 등의 관련 실태 연구에 따르면 허위 신고자는 보상금이나 고용 계약 연장 등 보상을 먼저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통상의 괴롭힘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의 분리나 가해 중단을 주로 원하는 것과 달랐다. 같은 행위에 대한 반복 신고도 많았다. 회사는 책임을 회피하며 피신고인에게 모든 책임을 지라고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거짓 신고를 당한 사람 5명 중 1명은 부당한 징계까지 받았다고 한다. 허위 신고가 또 다른 유형의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학계에선 모호한 법 규정이 허위 신고의 여지를 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리 법은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금지한다. 이에 비해 비슷한 법을 가진 나라들은 대부분 조항에 지속성이나 반복성 규정을 두고 있다. 대체로 6개월∼1년 이상 또는 주 1회 이상 계속돼야 괴롭힘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구체적 기준은 우리 사정에 맞게 바꾼다고 해도 객관성이 보완될 필요성은 있어 보인다.

▷허위 신고의 폐해는 신고당한 개인에 그치지 않는다. 거짓 신고가 횡행하면 진짜 피해자의 신고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들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지금도 직장 내 폭행·폭언 피해자 10명 중 6명이 불이익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한다는데, 신고가 더 위축될 수도 있다. 가짜 사건으로 근로감독관 업무에 과부하가 걸리면 피해 구제에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된다. 부작용을 막기 위해선 회사가 취업규칙에 허위 신고인을 징계하도록 하는 등의 지침을 마련하도록 한 해외 사례를 검토할 만하다.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지면 진짜 약자가 피해를 본다.



조종엽 논설위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