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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관 칼럼]이재명, DJ 닮고 싶은 게 맞나

입력 | 2024-06-09 23:21:00

쌍방울 대북송금 1심으로 ‘사법의 시간’ 본격화
개인 문제로 175명 헌법기관 방탄 노릇 시키면
사법적 유무죄 판단과 별개로 ‘정치적 유죄’
“DJ 닮고 싶다”… 그래놓고 의회주의 훼손할 건가



정용관 논설실장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은 818호다. ‘818’은 나름의 의미가 있는 숫자다. 민주당의 ‘중시조’라 할 수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일이 8월 18일이다. 올해 15주기가 되는 바로 그날, 당 대표를 뽑는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공교롭다. 이 대표가 추대든 경선이든 연임이 되면 민주당에선 DJ 이후 24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이 대표가 최근 ‘뉴DJ플랜’을 떠올리게 하는 정책 행보를 보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듯하다. 1995년 정계 은퇴를 번복하고 복귀한 DJ의 대권 플랜인 중도 실용 노선이다. 이 대표가 윤석열 정권을 향해 온갖 특검 공세를 펴면서도 다른 한편에선 국민연금 개혁이나 한강벨트를 겨냥한 종합부동산세 완화 등 민생 이슈를 선점하려는 투 트랙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게 그렇단 얘기다.

이처럼 다채로운 전법을 구사하며 ‘여의도 대통령’이란 소리가 나올 정도의 권력자가 됐지만, 요즘 그의 표정에선 웃음기가 사라진 듯 보인다. ‘사법리스크’란 다섯 글자의 족쇄 때문이다. 채 상병 사건과 명품백 문제 등으로 잠시 수면 아래 가라앉았던 그의 사법리스크는 쌍방울 불법 대북송금 의혹 사건에 대한 1심 판결로 일거에 다시 떠올랐다. 이에 관여한 혐의 등으로 자신이 임명했던 이화영 전 평화부지사가 징역 9년 6개월 선고를 받자 이 대표의 표정도 입도 굳어졌다.

판결문은 “조선노동당에 보낸 200만 달러는 이 대표 방북 사례금으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적시했다. 지난해 10월 단식 와중에 민주당 내 일부 반란표로 체포동의안이 가결됐을 때 법원의 영장 기각 사유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었고, 이 전 부지사의 변호인이 “이 씨에 대한 유죄 판결은 이 대표에 대한 유죄를 추정하는 유력한 재판문서가 될 것”이라고 한 터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대표의 유무죄를 예단할 수는 없다. 대북송금 보고를 직접 받았는지 여부는 증거와 법리에 따라 가려질 사안이다. 분명한 건 이 대표로선 ‘사법의 시간’ ‘재판의 시간’이 궤도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그는 쌍방울 문제 외에도 대장동·백현동 사건, 대선 공직선거법 위반, 2002년 검사 사칭 관련 위증 교사 혐의 등에 대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중 공직선거법 위반이나 위증 교사 혐의는 사안이 단순해 올해 안에 1심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한다.

해일처럼 몰려오는 사법리스크를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 이 대표가 짐짓 보수의 어젠다를 파고들며 ‘프레지덴셜’한 행동을 보이고는 있지만 속마음은 타들어가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쌍방울 수사 자체가 조작이라며 특검법을 발의하고, 수사한 검사 탄핵까지 추진하겠다고 하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광경이다. 자신이나 측근들을 변호했던 이들에게 배지를 달아준 뒤 대거 법사위에 배치시키고 특검의 최종 관문인 법사위원장 자리를 꽉 움켜쥐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선 패자였던 이 대표는 2년 전 당 대표에 출마하며 “DJ를 닮고 싶다”고 했다. 이번에도 개딸 당원들에 발을 딛고 입으론 DJ 따라 하기를 내세우며 위기를 돌파하려는 심산인 듯 보인다. 그러나 둘은 다르다. 무엇보다 DJ가 때론 길거리 투쟁에 나섰을지라도 국회에서의 협상과 타협을 중시한 ‘의회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대표를 둘러싼 온갖 사법적 이슈들은 모두 개인의 문제이지 민주당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당을 국회 다수당으로 만든 게 똘똘 뭉쳐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방어하란 뜻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위험을 당의 위험으로 전가시키는 건 유력한 정치인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국정시스템의 중요한 축인 제1야당을 형해화시키는 것이며, 이는 국회 마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이 대표의 방탄 행보는 ‘사법적 유무죄’와 별개로 ‘정치적 유죄’가 될 것이다.

퇴근하다 보니 “독재는 민주를 이길 수 없다”는 민주당 플래카드가 있었다. 이 구호가 공명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은 우선 윤 대통령이 독재조차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고, 둘째는 요즘 이재명의 민주당이 ‘민주성’을 상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당은 회사가 아니다. 여든 야든 막대한 혈세가 지급되는 중요한 국가 시스템이다. 개인의 사적 위험을 공적 위험인 양 ‘포장’하는 것은 국민을 호도하는 것이며, 나아가 의회주의를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DJ라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175석의 원내 1당을 대선 때까지 방탄 노릇만 하게 할까.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