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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김현수]“서울 오피스는 왜 안 비나” ‘웃픈’ 질문

입력 | 2024-06-09 23:12:00

김현수 뉴욕 특파원



“서울의 오피스 공실률은 제로(0)에 가깝더라고요.”

올 2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외신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글로벌 부동산 전문가 마크 노먼 뉴욕대 교수는 “서울에 갔다가 뉴욕과 다른 모습에 놀랐다”고 했다.

현재 뉴욕 맨해튼 오피스 빌딩은 텅텅 비어 있다. 빌딩 주인들이 대출을 제때 갚지 못해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금융사도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시한폭탄’ 같은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출근과 재택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근무 형태가 자리 잡아 사무공간이 남아 도는 것이다.

4월 국제통화기금(IMF) 춘계총회에서 열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크리슈나 스리니바산 IMF 아시아태평양국장의 대담에서도 ‘한국 상업부동산의 위험은 없는지’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이 총재는 “서울은 유럽이나 미국처럼 코로나19 기간 중 셧다운을 하지 않아 오피스 공실률이 거의 제로”라며 큰 위험이 없다는 취지로 답했다.


사무실 텅 빈 뉴욕, 꽉꽉 찬 서울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실제 서울 오피스 공실률은 1분기(1∼3월) 기준 5.4%다. 강남 여의도 성수동이나 A급 오피스는 가득 찼다. 같은 기간 뉴욕 맨해튼 공실률은 18.1%(투자은행 컬리어스 집계)로 사상 최고치다.

서울이 뉴욕에 비해 상업부동산 위험이 덜한 것은 좋은 일이지만 ‘우리는 왜 공실률이 낮은가’란 의아한 마음도 들었다. 마침 뉴욕에서 열린 한국관광공사의 한국 방문 홍보 행사에 등장한 미국 여행사 관계자가 “서울은 최고의 워케이션(휴가지에서 일하는 여행) 장소”라며 칭찬을 늘어놓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커피숍이나 어디든 와이파이를 비롯해 정보기술(IT) 인프라가 좋아 업무와 관광을 동시에 할 수 있어 고객 만족도가 높았다”고 했다.

서울 직장인들은 만원 지하철에 뛰어드는데, 뉴욕 직장인이 서울에 와서 원격근무를 한다는 사실에 ‘웃프다(웃기고 슬프다)’는 단어가 떠올랐다. 실제 지난해 미 스탠퍼드대가 실시한 34개국 조사에서 한국의 재택근무 일수는 월 1.6일로 최하위였다.


근무형태 변화도 어려운 경직성

재택근무가 무조건 좋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별 직무가 명확하지 않아 ‘팀 단위’로 특정 시간에 함께 일해야 할 수도 있고, 제조업처럼 출근이 필수인 곳도 많다. 그럼에도 도입률이 현저히 낮다는 점은 변화가 어려운 한국 사회의 경직성을 반영하는 듯해 씁쓸하다.

출퇴근으로부터 자유로우면 주거비가 좀 더 저렴한 외곽으로 이사할 수 있다. 또 어린 자녀나 아픈 가족을 돌볼 여유가 생겨 경제적 보수보다 유연한 근무형태가 더 중요한 사람들도 있다.

한국의 미국 법인에서도 한국 직원들은 눈치상 출근을, 미국 현지 직원들은 재택근무를 택할 때가 많다고 한다. 한 기업 임원은 이를 두고 우리 사회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규칙을 제대로 지킬 것’을 믿는 ‘신뢰 자본’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설득력 있는 해석이다.

많은 기업이 저성과자를 잡아내기 위해 우수한 직원까지 모두를 감시망에 넣는 것을 선호한다. 노동법상 정규직 해고가 어려워 근태 감시가 중요하다는 이유를 댄다. 정부나 정치권은 소수의 반칙 기업이 권리를 남용할까 봐 모든 기업의 해고를 어렵게 만들어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강화시켰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며 규제를 늘리는 사회에서 근무 형태는 고사하고 다른 변화는 쉬울까. 서울 오피스 공실률 얘기에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유다.










김현수 뉴욕 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