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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인질 4명 구출작전에 팔 난민 270여명 사망

입력 | 2024-06-10 03:00:00

하마스에 피랍 245일만에 구조
민간인 희생 군사작전 정당성 논란



고국 땅 다시 밟고 환호 지난해 10월 7일 중동전쟁 발발 당일 하마스에 납치됐던 이스라엘 민간인 안드레이 코즐로브(왼쪽에서 세 번째)와 알모그 메이르 얀(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8일(현지 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 인근 라마트간의 병원에 도착해 환호하고 있다. 이날 이스라엘군은 두 사람을 포함해 245일간 억류됐던 인질 4명을 구출했다. 라마트간=AP 뉴시스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에 납치됐던 인질 4명을 8일(현지 시간) 구출했다.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이 발발한 지 245일 만이다. 다만 구출 과정에서 이스라엘군의 공습과 포격으로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최소 274명 숨지고, 700명 이상이 다쳐 작전의 정당성 논란이 거세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여름 씨앗들(Seeds of Summer)’이라고 명명한 정보기관 신베트, 대테러 부대 야맘 등과의 합동 작전을 통해 가자지구 중부 누세이라트 인근에서 슐로미 지브(41), 안드레이 코즐로브(27), 노아 아르가마니(26·여), 알모그 메이르 얀(22)을 구출했다. 4명 모두 전쟁 발발 당일 가자지구 인근 ‘노바 음악축제’에 참여했다가 납치됐다. 당국은 이들이 납치됐을 때의 사진, 이날 가족과 재회한 사진을 동시에 공개하며 정당성을 주장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작전 참가자들을 치하하며 “테러리즘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반면 하마스는 “민간인에 대한 끔찍한 학살”이라고 맞섰다.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 수반도 ‘학살’이라고 규탄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긴급회의 소집을 촉구했다.




시장-난민촌서 벌어진 인질 구출작전… “이軍, 10분새 로켓 150발”


인질 4명 구출, 팔 민간인 274명 사망
복층건물 모형서 수주간 작전 연습… 장갑차-헬기 등 동원 한낮 구출작전
“거리곳곳에 어린이들 시신, 생지옥”… 국제사회 “온당한가” 비판 거세


“‘다이아몬드(인질)’가 우리 손에 있다.”

8일(현지 시간) 오전 11시경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중부 누세이라트 주택가. 이스라엘군 인질 구출 작전팀이 지난해 10월 7일 중동전쟁 발발 당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에 납치된 자국 민간인 인질 4명을 구출한 직후 지휘본부에 이 같은 무전을 보냈다.

이스라엘군은 이례적으로 한낮에 작전을 실시했다. 야간 매복을 예상한 하마스의 허를 찌르기 위해서다. 대테러 부대 야맘, 정보기관 신베트 정예요원 등으로 구성된 작전팀은 장갑차, 로켓추진 유탄(RPG) 등을 동원해 하마스의 거센 반격 속에서도 구출에 성공했다.

다만 이번 작전은 주택가, 시장, 난민촌 등이 밀집한 지역에서 이뤄져 최소 274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숨졌다. 주말 오전 시장 등을 찾았던 여성과 어린이가 대거 희생됐다. 이스라엘 측은 “하마스가 의도적으로 민간인 거주지에 인질을 숨겼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4명을 구출하기 위해 274명을 죽인 것은 온당한가”라는 비판 여론이 거세다. 가자지구 당국은 전쟁 발발 이후 8일까지 3만6801명의 민간인이 희생됐다고 밝혔다.

● 건물 모형 만들어 치밀한 연습

이스라엘군은 ‘여름 씨앗들(Seeds of Summer)’로 명명한 이번 작전을 위해 몇 주에 걸쳐 인질이 갇힌 복층 건물 2곳의 모형을 만들어 구출 작전을 연습했다. 미국은 인질 관련 첩보를 이스라엘 측에 제공했다. 이날 작전은 개시 몇 분 전에 최종 승인이 떨어졌다.

이스라엘군에 따르면 여성 인질인 노아 아르가마니(26)는 건물 두 곳 중 한 팔레스타인 가정에, 알모그 메이르 얀(22)과 안드레이 코즐로브(27), 슐로미 지브(41) 등 다른 인질 3명은 또 다른 건물의 가정에 각각 억류돼 있었다. 하마스는 두 팔레스타인 가정에 돈을 주고 인질 억류를 부탁했고, 이 집에는 인질을 감시할 무장대원이 배치됐다.

인질 구출이 시작되자 하마스는 포격 등을 통해 거세게 반격했다. 작전지역 상공을 비행하는 이스라엘 헬기를 격추하기 위해 대공 미사일도 발사했다. 이스라엘도 이에 맞서 공습을 강화하면서 민간인이 대거 희생됐다. 양측간 교전이 격화되며 야맘 지휘관인 아르논 자모라도 숨졌다. 이스라엘은 현재 그를 기리기 위해 작전명을 ‘아르논 작전’으로 바꿔 부르고 있다.

인질 4명은 모두 전쟁 발발 당일 가자지구 인근에서 열린 ‘노바 음악축제’에 참여했다가 납치됐다. 특히 당시 하마스 대원이 오토바이에 강제로 태워 끌고 가자 아르가마니가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 영상으로 공개되며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245일 만에 풀려난 그는 암 투병 중인 어머니와 재회했다. 반면 얀의 아버지는 아들의 구출 전날인 7일 숨졌다. 아들이 납치된 후 몸무게가 20kg이나 빠질 만큼 힘겨운 생활을 이어갔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10월 1명, 올 2월 2명의 인질을 각각 구출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이번 작전을 ‘전쟁 발발 후 최고의 구출 성과’라며 “앞으로도 (구출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 4명 구출하다 274명 희생, “대학살” 반발

짙은 연기로 뒤덮인 팔 난민촌 8일(현지 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중부 누세이라트 난민촌 인근에서 이뤄진 이스라엘의 인질 구출 작전과 이에 대한 하마스의 반격으로 일대가 짙은 연기로 뒤덮였다. 이스라엘이 지난해 10월 7일 중동전쟁 발발 당일 하마스에 납치된 인질 4명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최소 274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숨졌다. 누세이라트=AP 뉴시스

하마스뿐 아니라 가자지구 통치권을 두고 하마스와 경쟁 중인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는 한목소리로 “대학살”이라며 이스라엘을 규탄했다.

작전 당시 누세이라트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있던 주민 니달 압도 씨는 미 CNN방송에 “10분도 안 돼 150발의 로켓이 떨어졌고 도망치는 동안에 더 많은 로켓이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특히 거리 곳곳에 어린이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며 ‘생지옥’이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은 앞서 자국 인질을 구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수차례 대규모 민간인 희생자를 낳은 작전을 벌이다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올 2월에는 구호 트럭에 몰려든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발포해 최소 112명이 숨졌다. 두 달 후에는 구호 물품을 싣고 가던 국제구호단체 월드센트럴키친(WCK) 트럭에 오폭을 가해 7명이 사망했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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