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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억 들였지만 의사없어 개원 못한 민관협력의원…빗장 풀리니 ‘빅5’ 관심

입력 | 2024-06-11 10:18:00

50억 들여 지난해 1월 전국 최초 설립
5차 공고에도 의사 없어 문 못 열어
휴일·야간 진료 부담 등으로 ‘손사래’
운영 기준 의료법인으로 확대하면서
서울 빅5 비롯한 전국 병원들 눈독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에 들어선 민관협력의원. 지난해 1월 준공했지만, 의사를 구할 수 없어 현재까지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제주=송은범 기자 seb1119@donga.com

의료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제주 서귀포시가 전국 최초로 만든 ‘민관협력의원’이 1년 4개월째 방치되고 있다. 50억 원에 가까운 돈을 들여 건물을 짓고 첨단 장비를 들여놨지만, 정작 입주할 의사를 구하지 못해서다.

결국 제주도가 운영 기준을 ‘개인’에서 ‘의료법인’으로 확대해서야 서울 ‘빅5’ 병원 중 한 곳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11일 서귀포시에 따르면 민관협력의원은 의료 사각지대의 응급환자 수용과 야간·휴일 진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서귀포시가 2020년부터 추진한 의료지원 사업이다. 서귀포시는 국비 등 47억4500만 원을 투입해 대정읍 상모리 일대 4885㎡ 부지에 연면적 885㎡의 의원동과 81㎡ 면적의 약국동을 지었다. 지난해 1월 준공해 흉부방사선과 내시경, 복부초음파, 물리치료 등 의료 장비 15종·46대도 갖춰졌다. 여기에 서귀포시는 의료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제주특별자치도 공유재산 관리 조례’까지 개정해 공유재산인 건물과 용지 사용료를 대폭 감면했다. 구체적인 감면 규모는 건물 시가의 1000분의 5까지다. 건물 감정평가액이 1억 원이라면 조례를 통해 연간 사용료를 50만 원까지 낮출 수 있다.

● 아파도 갈 곳 없는 읍·면 사람들

민관협력의원이 들어선 서귀포시 서부지역(대정읍·안덕면 등)은 감귤과 마늘 등 농업을 생업으로 하는 주민이 많은데다 노인 인구 비중도 높아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 주민이 많다. 농사를 짓다 보면 물리치료도 주기적으로 받아야 하지만 가까운 병원이 적다 보니 주민들은 매번 차로 1시간가량 걸리는 제주시 내 병원을 찾고 있다.

실제 서귀포시가 시민들의 거주지와 건강보험 외래진료 청구 병원의 소재지를 대조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시민 절반 이상이 제주시 내 병원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정읍·안덕면 주민의 거주 지역 병원 이용률은 11~28%로 서귀포시 지역에서도 가장 낮았다. 이들이 야간이나 휴일에 시내 병원을 찾는 건수는 한 해에 10만여 건, 진료비 지출은 28억 원이 넘는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에 들어선 민관협력의원. 지난해 1월 준공했지만, 의사를 구할 수 없어 현재까지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제주=송은범 기자 seb1119@donga.com

● 건물·장비 줘도 의사들은 ‘손사래’

큰 기대를 받고 지어진 민관협력의원이지만, 정작 운영에 나설 의사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지난해 2월 15일을 시작으로 올해 4월까지 5차례에 걸쳐 입찰 공고를 올렸지만 모두 유찰됐다. 수익 창출이 불확실한데다 휴일·야간 운영에 따른 의료진 확보의 어려움, 건강검진기관 운영 부담, 의료진 주거 문제 등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서귀포시는 의료진의 부담을 덜기 위해 기준을 대폭 낮췄다. 기존에는 필수 과목(내과·가정의학과·응급의학과) 전문의 1명을 포함한 의사 2~3명으로 구성된 팀을 꾸려야 했다. 하지만 4차 공고부터는 ‘전문의 자격을 가진 의사’로 완화해 대표 의사 1명으로도 개원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도 유찰이 계속 이어지자 이번엔 제주도가 나섰다. 제주도는 5차 공고 유찰 직후 ‘의료법인 설립 및 운영 지침’을 개정해 개인이 아닌 ‘의료법인’도 민관협력의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제주도의회도 지난 4일 ‘제주특별자치도 민관협력의원·약국 설치 및 운영 조례 일부개정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에는 ‘도지사는 민관협력의원·약국 운영과 야간·휴일 진료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경우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라는 내용이 새롭게 포함됐다. 재정 지원 관련 비용 추계서에는 휴일·야간 응급 진료를 위한 최소 운영 인력 인건비(간호사 2명), 청사 관리와 환경 정비, 시설물 개·보수 사업을 합쳐 연평균 2억7000여만 원을 제시했다.

● 빗장 풀리니 ‘빅5 병원’ 관심

제주도가 의료법인도 민관협력의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지침을 개정하면서 수도권 5대 대형병원을 일컫는 ‘빅5’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빅5 병원은 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을 말한다.

11일 제주도에 따르면 빅5 병원 가운데 한 곳이 최근 민관협력의원을 직접 방문해 실사를 벌였다. 여기에 민관협력의원을 운영한다면 몇 명의 의료진을 파견할지에 대해서도 검토하고 있다. 이 병원은 이달 말경 다시 한번 제주를 방문해 타당성을 검토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제주도 관계자는 “빅5 병원을 비롯해 전국의 의료법인이 민관협력의원 운영을 위한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며 “6차 공고는 이달 말에서 다음 달 초 사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제주=송은범 기자 seb1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