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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의 초상은 잡스를, 잡스는 뒤러를, 뒤러는 예수를 따라…창조주를 꿈꾸다[양정무의 미술과 경제]

입력 | 2024-06-11 22:57:00

혁신기업가의 초상 사진
손을 턱에 붙이고 정면 응시하는… 일론 머스크 평전의 책표지 사진
스티브 잡스 평전 사진과 닮은꼴… 잡스를 잇는 ‘강력한 혁신가’ 자처
잡스는 예수 본딴 뒤러 초상 느낌… ‘창조적 예술가형 CEO’ 부각 효과



작년 출간된 일론 머스크 평전의 표지 사진(왼쪽부터). 손을 턱에 붙이고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이 2006년 촬영된 스티브 잡스 전기의 자신만만해 보이는 표지 사진과 닮았다. 잡스의 초상 사진은 독일의 르네상스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가 그린 도발적 자화상을 연상시킨다. 뒤러의 자화상은 안토넬로 다메시나의 그림 속 예수 그리스도가 축복을 내리는 모습과 유사하다. 뒤러는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는 자신을 창조주에 빗댔다. 르네상스 화가의 초상화 속 창조적 인문정신이 21세기 혁신 기업가 초상 사진으로 면면히 이어진다. 사진 출처 내셔널갤러리 홈페이지·동아일보DB


《2012년 일론 머스크는 바쁜 한 해를 보낸다. 6월에 기대하던 신형 전기차 모델 S를 출시하지만 품질이 마음에 들지 않아 생산 품질 책임자를 3명이나 해고했다. 10월에는 스페이스X의 우주 화물선 드래건이 첫 상업 우주 비행을 성공시켰다. 이 와중에 두 번째 부인과 이혼절차에도 들어갔다. 그해 그는 인상적인 사진 한 장을 찍었는데 이 사진은 11년 후 그의 생애를 담은 책의 표지로 쓰인다.》

작년 9월 출판된 ‘일론 머스크’(월터 아이작슨·21세기북스) 전기 사진이 그것이다. 760쪽에 담긴 메시지는 아주 단순하다. “나는 정상이 아니다”라는 고백이다. 여기서 반전은 자신의 비정상성이 기업의 핵심 동력이라는 주장이다. 책 내용과 달리 외피는 스마트하다. 책 표지에서 그는 가지런히 두 손을 모은 채 초롱초롱한 눈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이 표지는 또 다른 괴팍한 기업가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바로 2006년 촬영된 애플의 스티브 잡스 사진이다. 이 사진은 그의 사후 출간된 전기의 표지가 된다. 시기적으로 보면 일론 머스크는 스티브 잡스의 초상 사진을 적극 참고해 자신의 이미지를 연출했다고 볼 수 있다. 메시지는 명확하다. 잡스가 떠났으니 이제 자신이 잡스의 뒤를 잇는 21세기의 혁신적 기업가라는 것. 전기 작가도 잡스와 같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잡스의 사진은 2006년 뉴욕 스튜디오에서 단 30분 만에 촬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작가는 앨버트 왓슨이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그의 초상 사진이 놀라울 만큼 500년 전 독일에서 활동했던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자화상을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의 눈길을 잡스와 뒤러의 초상 이미지로 옮겨보자.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두 이미지가 많이 닮아 있다. 정면 자세부터 손동작까지, 특히 머릿결 등 세부를 드러내는 부드러운 조명까지 비슷하다. 만약 뒤러가 살아 돌아온다면 표절이라고 소송을 걸었을 것 같다.

그런데 뒤러가 28세에 그린 이 자화상은 미술사학자들로부터 너무나 건방지다고 비판받아온 작품이다. 뒤러의 자화상은 현대의 경영인에게 영향을 끼칠 만큼 에너지를 발산하지만 사실 이것도 앞 세대에 유행하던 그림을 많이 베끼고 있다. 기본적으로 뒤러의 자화상은 세상의 창조주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축복을 내리는 기독교 도상과 아주 유사하다. 불경하게도 뒤러는 예수가 들어갈 바로 그 자리에 자신의 얼굴을 집어넣은 것이다.

호기가 넘치다 못해 불경스럽다고 할 만한 그림이다. 뒤러는 르네상스라는, 미술가의 삶이 급격히 변하던 시기를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자신을 창조주처럼 그려 화가도 창조한다는 점에서 신적인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 이런 도발적인 자화상을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뒤러가 28세에 그린 자화상은 일종의 ‘미술가의 독립선언문’ 같은 그림으로 봐야 한다. 화가의 사회적 가치가 창조에 있다고 당당히 표현한 작품이다.

잡스는 뒤러의 초상화처럼 자신이 생각이 많은 예술가적 최고경영자(CEO)라고 말하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그가 예술인과 기업인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직업적 양극단을 자기 정체성 안에 구현하려 했다는 점이 놀라운데, 이 같은 융합형 인간을 새로운 21세기형 기업인의 아이콘으로 끌어냈다는 점을 눈여겨볼 만하다.

일반적으로 미술사학자들은 하나의 이미지가 완성되면 그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를 낳는다고 보고, 이것을 추적하는 것을 ‘도상의 계보학(iconology)’이라고 부른다. 공교롭게도 독일 르네상스 화가가 500년 전에 그린 자화상 한 점이 오늘날 가장 혁신적인 기업인으로 알려진 두 인물의 초상 이미지와 연결된다는 점이 너무나 흥미롭다.

형태의 유사성은 결국 의미의 인용이기에 뒤러가 도전했던 창조적 르네상스적 인간형이 오늘날 기업인의 이미지에 재활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잡스가 예술가적 CEO를 원했다면, 머스크는 자신이 잡스 같은 강력한 CEO로 인식되길 원했다고 볼 수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머스크는 단순히 잡스를 따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기서 자신만의 느낌까지도 슬쩍 남겨 놓은 것 같다는 점이다. 잠시 머스크의 초상화를 뚜렷이 쳐다보자. 아마도 두 눈과 콧등 사이로 갑자기 테슬라 마크가 툭 튀어나올 것이다. 나만의 착시일까? 아니면 그가 조명이나 리터치를 통해 교묘하게 의도한 것일까? 어쩌면 머스크의 초상 이미지 속에 테슬라의 마크가 각인되어 보이는 건 그의 광적인 일중독이 그 자신을 회사와 동일시하여 일어난 ‘잠재의식 광고 효과(subliminal advertising)’일 수도 있다. 그런데 전기에 담긴 머스크의 생애는 그간 전혀 겪어 보지 못한 새로운 유형의 기업인을 보여 주기에, 이 정도는 자신의 초상 이미지 안에 계산해 넣고 연출했을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이 바뀌면 기업 문화도 바꿔야 하고, 그것의 시작은 기업인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잡스와 머스크의 사진 한 장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머스크의 도발적인 이미지가 혁신적 기업인의 전형으로 우리의 뇌리에 각인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