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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문병기]“AI는 미래戰 게임 체인저”… AI무기 실전배치 속도 내는 美

입력 | 2024-06-11 23:09:00

美 수도 워싱턴서 열린 ‘AI 엑스포’
팰런티어 등 AI 방산기업 총출동… 롬버스파워 “北도발 AI로 예측”
“AI무기, 전술핵과 대등한 위력”… 美 “무인무기에 10억 달러 투입”




지난달 8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인공지능(AI) 엑스포에 ‘롬버스파워’ ‘팰런티어’ 등 주요 AI 방위산업 기업이 총출동했다. ‘롬버스파워’는 AI를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넉 달 전 우크라이나 전쟁을 예측해 유명해졌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인공지능(AI)이 미국을 더 강하게 합니다.” 지난달 8일(현지 시간) 미국 수도 워싱턴의 ‘월터 E 워싱턴 컨벤션센터’. 곳곳에서 군복을 입은 미군 장교들이 보였다. 이들은 ‘AI 엑스포’에 참가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박람회 성격의 AI 행사가 미 AI 산업의 메카로 꼽히는 실리콘밸리가 아니라 워싱턴에서 열린 것은 처음이다. 이날 엑스포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메타 같은 빅테크 기업과 AI 기술을 방위 산업에 활용한 록히드마틴, 팰런티어, 롬버스파워, 스카이디오 등 150여 개 기업이 참가했다. 에너지, 생명공학 분야의 최첨단 AI 기술도 선보였지만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단연 AI를 활용한 군사기술이었다.》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조 바이든 행정부의 주요 관계자도 자리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AI는 미국의 미래를 좌우할 기술”이라며 “중국과의 AI 경쟁에서 미국이 선두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가운데 미국은 AI 군사기술에 대한 투자를 본격화하고 있다. 의회는 중국과의 AI 경쟁을 위해 매년 320억 달러(약 43조7000억 원)를 지원하기로 했고, 미군과 주요 정보기관 등도 군사 분야의 AI 기술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에 맞서 중국 인민해방군은 최근 소총을 장착한 로봇 개를 공개하는 등 AI 무기를 둘러싼 군비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 우크라戰 발발 4개월 전 예측한 AI


이날 엑스포는 에릭 슈밋 전 구글 최고경영자(CEO)를 주축으로 설립된 싱크탱크 ‘특별경쟁연구프로젝트(SCSP)’가 주최한 행사다. SCSP는 의회 자문기구인 국가인공지능안보위원회(NSCAI)의 정책보고서에 따라 AI 기술의 군사적 상용화를 민간 기업과 함께 연구하는 조직이다.

전시장 곳곳에 군사 AI 기업들이 마련한 대형 전시관이 있었다. 미 국방부에 분쟁을 예측하고 전략적 판단을 지원하는 AI 플랫폼 ‘가디언’을 제공하는 롬버스파워가 대표적이다. 이 기업은 전시관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2022년 한국과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예측했다고 설명했다.

롬버스파워는 특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4개월 전인 2021년 10월 우크라이나 전쟁을 예측해 큰 주목을 받았다. 이는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했을 때부터 줄곧 위성사진, 열화상 카메라 등을 통해 러시아군의 미사일 기지 움직임, 차량 이동량, 국경지역 도시의 자영업자 매출 등을 분석했기에 가능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판단을 내리는 데 결정적인 근거가 된 ‘스모킹건’은 러시아 장교들의 소비 패턴이었다. 스탠리 매크리스털 롬버스파워 고문 겸 전 미 육군 합동특수작전사령관은 외교매체 포린폴리시(FP)에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 국경으로 군대가 이동한 것을 두고 군사 훈련이라고 주장했지만 당시 장교들의 소비 패턴을 보면 그들이 당분간 집은커녕 군대 막사로조차 돌아갈 계획이 없음이 분명했다”고 설명했다.

즉, 미국이 정보요원을 통해 러시아 기밀을 빼내거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AI만 가지고도 전쟁을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었던 셈이다. 매크리스털 전 사령관은 “이제 백악관 상황실에는 더 많은 전문가가 앉기 위한 큰 테이블보다는 디지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AI 기술이 북한의 거듭된 핵 개발에 따른 한반도 핵 불균형을 깨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기대한다. AI가 북핵 공격을 사전에 파악해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롬버스파워 관계자는 “한반도 정세도 우리의 주요 관심사”라며 “북한의 도발 징후를 예측하기 위한 분석도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 공격목표 식별, 6시간→2분

지난달 8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인공지능(AI) 엑스포에 참가한 HD현대의 모습. 이날 미국 AI 기업 ‘팰런티어’와 공동 개발한 무인 수상정 ‘테네브리스’의 모형을 처음 공개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엑스포에는 한국 기업도 참여했다. HD현대는 팰런티어와 공동 개발하는 정찰용 무인수상정(USV·Unmanned Surface Vehicle) ‘테네브리스’의 모형을 이날 처음으로 공개했다. 무인 수상정은 위험지역 정찰, 기뢰 탐색 및 제거 임무 등에서 유인 함정을 대체할 미래 해전의 필수 무기로 꼽힌다.

이 무인 수상정의 함장은 팰런티어가 개발하는 AI다. 팰런티어는 여러 전쟁에 관한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군사 작전을 지원하는 AI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물론이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에서도 이스라엘을 지원하고 있다.

미 타임지에 따르면 팰런티어가 개발한 ‘메타콘스텔레이션(MetaConstellation)’ 프로그램은 수백 개의 상업용 위성을 분석해 공격할 표적을 식별해낼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통상 6시간이 걸리던 표적 식별에 2, 3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어 공격 목표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최적 무기를 제안한 뒤 이 무기를 활용한 공격 결과에 대한 피드백까지 받을 수 있다. 인간이 공격을 결정하기 전까지 모든 과정이 AI를 통해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셈이다. 앨릭스 카프 팰런티어 CEO는 타임에 “재래식 무기와 첨단 알고리즘 전쟁 체계를 결합시키면 ‘전술 핵무기’와 맞먹는 위력을 지닐 수 있다”고 말했다.

● “美中 AI 군축에 실패하면 파멸”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10억 달러(약 1조4000억 원)를 들여 수천 대의 무인기(드론), 무인 함대 등을 도입하는 ‘리플리케이터 구상’을 발표헀다. AI 무기의 실전 배치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미 국방부는 지난달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된 자폭 드론 ‘스위치블레이드-600’을 리플리케이터 구상을 통한 첫 구매 대상으로 선정했다. HD현대와 팰런티어가 공동 개발하고 있는 ‘테네브리스’ 역시 리플리케이터 구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이 AI 기술을 활용한 자동화 무기 개발과 배치를 서두르고 있는 것은 중국의 군비 확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또한 미국은 AI 군사적 활용을 제한하는 국제 규제와 합의를 통해 중국과 러시아를 압박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13∼15일 이탈리아 풀리아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도 AI 기술의 군사적 활용을 어떻게 규제하느냐가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인간의 승인 없이 AI를 활용해 공격하는 자동화 무기 개발을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규제 자체가 미국 등 서방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며 반발한다. 특히 최근 캄보디아와의 연례 합동훈련에서 소총을 장착한 로봇 개와 드론 영상을 공개하는 등 자동화 무기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콜린 칼 전 미 국방부 정책차관은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 보고서를 통해 “AI 기술 관리에 실패한다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새로운 위험과 파멸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