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 북한군 휴전선 50m 침범 확성기 감시용 ‘벌목-제초’ 가능성… 국지도발 유도 의도적 침범 일수도 인터넷서 경고사격 사실 확산되자 軍, 이틀 지나서야 공개… 축소 논란
북한군 20∼30여 명이 군사분계선(MDL·휴전선)을 넘어온 9일 낮 12시 반은 우리 정부가 북한 ‘오물 풍선’ 3차 살포에 대한 상응 조치로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결정한 뒤 준비하던 시점이었다. 그 30분 후 정부는 확성기 방송 재개를 공식 발표한 뒤 오후 5시부터 방송을 북한 지역으로 송출했다.
그런 만큼 북한군 다수가 동시에 이날 비무장지대(DMZ) 깊숙하게 들어와 MDL까지 넘어온 건 우리의 대북 확성기 동향을 밀착 감시하기 위한 사전 작업일 가능성이 있다. 북측 감시초소(GP)에서 대북 확성기를 감시할 때 수풀이 시야를 방해할 수 있어 미리 방해 요소를 제거하려고 했을 수 있다는 것. 일각에선 북한이 확성기 포격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시야를 확보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2015년 8월 북한군은 경기 연천에 설치된 우리 대북 확성기 주변을 포격한 바 있다. 이번에 북한군이 MDL을 침범한 지역은 연천과 강원 철원 일대였다.
● 軍 “단순 침범”…‘국지도발 떠보기’ 관측도
하지만 이번 MDL 침범에 앞서 북한은 오물 풍선 테러를 연이어 감행했고, 우리 정부는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준비했다. 그리고 이날 실제 방송 송출을 불과 4시간 반 앞두고 북한은 MDL을 침범했다. 북한군은 4월부터 하루에 수백∼수천 명에 달하는 병력을 휴전선 일대에 투입해 지뢰도 매설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만큼 이번 MDL 월선은 벌목과 제초 작업으로 가장한 북한의 의도적인 침범이자 도발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군이 지뢰 도발 등 국지 도발 감행에 앞서 우리 군 경계 태세를 떠보기 위한 사전 작업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은 이번 MDL 침범 11시간 후 “우리(북한)의 새로운 대응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새로운 도발 가능성을 언급하며 위협했다.
김대영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2015년 7월 북한군 10여 명은 MDL을 넘어왔다가 우리 군 경고사격에 별다른 대응 사격 없이 돌아갔다”면서 “이 사건 20여 일 후 DMZ에서 목함 지뢰 도발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이어 “MDL 침범은 DMZ 내 도발의 전조일 수 있다”고 했다. 2015년 7월에도 당시 우리 군 당국은 북한군의 휴전선 침범에 대해 MDL 표시 확인 작업을 하던 중 넘어온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 이틀 지나서야 침범 사실 공개
군 당국이 북한군 침범 사실을 이틀이 지난 11일 공개한 배경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일각에선 북한 오물 풍선 살포와 우리 확성기 방송 재개 대응 등으로 남북 무력 충돌 위험이 최악으로 치달을 것을 우려해 군이 의도적으로 발표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 군은 전방 지역 10여 곳에 확성기 40여 개를 9, 10일 이틀에 걸쳐 모두 설치했다.
이와 관련해 합참 관계자는 “단순 해프닝이어서 굳이 (북한군의 침범을) 공개할 이유가 없다는 내부 판단이 있었다”면서도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9일 경고사격이 있었다는 내용이 확산돼 기자들 문의가 이어져 공개한 것”이라고 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